올해 초부터 오데마 피게가 줄줄이 신작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매우 화려한 시계들이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로열 오크 플라잉 뚜르비옹, 코드 11.59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유니버설 등 길고 긴 이름만큼 화려한 외관, 그리고 엄청난 기능 등을 자랑합니다. 낯선 이 모델의 이름들을 이해하기 위해 컴플리케이션의 정의를 먼저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컴플리케이션이란 시침과 분침으로 시간을 가리키는 기능 외에 모든 추가적 기능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때 몇 가지 이상의 복잡한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으로 구분하게 됩니다. 중력으로 생기는 오차를 자동으로 조정할 수 있는 뚜르비옹, 평년과 윤년 등 1년 동안 12개월의 날짜를 정확하게 세팅하는 퍼페츄얼 캘린더, 원하는 시간대를 종소리로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달의 위상을 알려주는 문페이즈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고급 시계 브랜드일수록 이 복잡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의 개발에 몰두하며 시계 제작 기술 우위의 상징으로 활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롤렉스에서는 이런 화려한 시계들을 흔히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롤렉스의 기술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롤렉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튼튼하고 정확한 ‘실용적인' 시계입니다. 현행품들이 1931년 최초 개발된 오이스터 퍼페츄얼의 설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롤렉스는 확고한 고집이 있습니다. 시계도 기계이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해지면 부품 수가 많아져 지속성과 내구성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신 추구하는 기능에 한해서는 성능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아낌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이 현재의 직설적인 디자인에 잘 녹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롤렉스는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결정을 했다고 봅니다. 처음에 예시를 든 오데마 피게의 코드 11.59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등의 시계는 리테일가가 무려 20억 원을 넘나듭니다. 그 외 다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들도 10억 정도는 우습게 넘고는 하죠. 복잡하고 어려운 시계인 만큼 생산량이 적고, 만드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립니다.
롤렉스가 매년 85만 개에서 100만 개의 시계를 생산한다고 추정하는데요, 반면 럭셔리 시계의 삼대장이라 불리는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바쉐론 콘스탄틴의 생산량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오데마 피게의 1년 생산량이 5만~7만 개, 바쉐론 콘스탄틴은 2만~ 2만 5천 개(출처 : Bloomberg), 파텍필립은 1839년 창립 이후 현재까지 생산한 시계가 백만 개가 채 안 될 것(출처 : Christie’s)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량생산되는 시계지만, 시계마다 엄격한 품질 관리와 15번의 검수를 통과해야만 소비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직접 크로노미터 검증기관을 운영할 정도로 정확도 심혈을 기울입니다. 복잡한 형태의 컴플리케이션이 추가될수록 설계가 까다로워져 검수 시간, 생산량, 제조원가가 타격을 입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특유의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견고하고 제 역할을 다 하는 이미지가 오늘날 롤렉스의 브랜드 철학과 잘 닿아있습니다.
롤렉스에서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출시한 과거는 있습니다. 1942년에 출시된 Ref. 4113은 롤렉스의 유일한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입니다. 12개밖에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의 캘린더 기능을 갖춘 모델은 단 두 가지의 레퍼런스였습니다. 1949년 출시된 Ref. 8171, ‘파델론’과 1950년 오이스터 퍼페츄얼 케이스의 COSC 인증도 받은 Ref. 6062은 희귀해 유명 옥션하우스에서만 접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를 위해 제작된 몇 안되는 Ref. 6062의 특별판은 2017년 경매서 5백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이유들로 인해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은 롤렉스의 라인업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죠.
브랜드 마다 각자의 영역에서 경지에 올라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시계인들에게 지속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Young
Writer
내 꿈은 시계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