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천장의 형광등에 붙여놓았던 야광 별의 불빛은 녹색을 띱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상구를 표시하는 야광등 또한 녹색을 띠죠. 그런데 왜 롤렉스의 다이브 시계들은 푸른빛의 야광 도료를 쓰고 있는 걸까요?
이 강렬한 푸른빛으로 스포티함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연출하는 야광도료는 롤렉스의 특허와도 같은 크로마라이트(Chromalight)입니다. 크로마라이트의 장시간 지속성은 롤렉스 기능성 시계의 정통과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듯, 도전하는 탐험가들의 길을 밝혀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크로마라이트의 탄생 이전에도 야광도료는 사용되었습니다. 1953년부터 야광 기능의 시계를 출시한 롤렉스가 어느 소재들을 사용해가며 진화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롤렉스가 1953년 서브마리너 등에서 처음 사용한 야광 물질은 라듐(radium) 소재가 섞인 합성 도료였습니다. 방사능 피폭 연구가 부족했을 당시 라듐은 식품, 화장품, 섬유 산업 등에 활발히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반감기가 1,200~1,600년인 것을 생각하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 물질인지 바로 감이 올 것입니다. 안전 조치가 취해지긴 했지만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롤렉스는 라듐을 포기하게 됩니다.
롤렉스는 1963년부터 90년대까지 방사능 수치가 감소 된 대체 방사선 소재인 트리튬(Tritium)을 도료의 합성소재로 사용하게 됩니다.
‘트리튬 H-3’라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야광물질로 도색이 된 시계들은 다이얼 6시 방향에 ‘T’가 표기되어 생산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시계에서 방출되는 방사능 수준을 표시하는 T 표기의 종류입니다.
트리튬 기반 야광 롤렉스 시계들은 연식이 오래될수록 다이얼 마커, 인덱스, 핸즈가 때가 낀 것 마냥 누렇게 착색됩니다. 트리튬 야광도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반감기가 12.5년이라 10년도 안되어 착색현상이 시작됩니다. 착색이 심한 시계들을 파티나(Patina)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부 금속이 산화 과정에서 색이 변하는 현상을 본떠 부르게 된 별명입니다. 특유의 빈티지한 컬러 덕분에 파티나 시계들은 시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트리튬 또한 방사성 물질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1998년부터 롤렉스는 일본의 화학회사 네모토(Nemoto & Co.,Ltd.)가 개발한 방사선 물질을 일체 포함하지 않은 루미노바(Luminova)를 사용하게 됩니다. 루미노바는 인광(phosphorescent) 물질로만 이뤄져서 빛을 흡수, 축적, 발광하여, 사전에 빛에 노출되는 축광 과정만 있으면 시계는 어둠 속에서 빛을 내뿜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시계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녹색의 야광불빛을 띄고 있습니다. 다이얼의 착색 현상과 세월의 흐름에도 성능 저하가 없다는 점도 소비자들에게 큰 어필이 되었죠.
2000년에는 스위스 회사 스위스 회사 RC Tritec AG를 통해 제조/유통된 루미노바, 슈퍼루미노바(Super-LumiNova) 도료를 입게 됩니다. 1998~2000 생산된 롤렉스 시계들은 6시 다이얼에 심플하게 SWISS 표기를, 2000~2018 생산된 시계들은 SWISS MADE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크로마라이트(Chromalight)는 2008년 출시된 Ref. 116660 딥씨와 함께 출시되었습니다. 깊고 어두운 바다탐험에 특화된 딥씨와 어울리는 상징적인 첫 등장이었습니다. 롤렉스가 트레이드마크를 등록한 이 특수 인광물질은 어둠 속에서 더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푸른색을 띄우며 야광은 8시간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일반 야광물질보다 2배 더 길게 유지되는 기술력으로 롤렉스는 또 한 번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게 됩니다.
크로마라이트의 특징을 몇 가지 알아보겠습니다. 슈퍼루미노바보다 더 강렬한 빛을 내고 더 오래 지속됩니다. 크로마라이트 마커는 빛을 받을 때 눈에 띄게 밝은 흰색을 띱니다. 크로마라이트는 슈퍼루미노바와 같은 인광체로, 시계가 강렬한 푸른빛을 발생하길 원한다면 햇빛 등의 광원에 장시간 노출시켜줄수록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납니다.
Deep Sea 116660
44mm, 디블루, 오이스터
Explorer 2 226570
42mm, 화이트, 오이스터
2015년부터 대부분의 오이스터 케이스 모델들이 크로마라이트를 사용하게 되었고, 야광 지속력이 향상된 크로마라이트는 2021년에 출시된 신규 익스플로러 2(Ref. 226570)를 시작으로 현재 모든 프로페셔널 라인과 다수의 클래식 라인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 소재를 시계 마커와 다이얼에 입히는 데에는 전문가들이 직접 손으로 칠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까요? 도료를 균일하고 정밀하게 칠하기 위한 특수 도구도 사용됩니다. 과정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기계로 대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크로마라이트의 성능이 너무 좋은 나머지 주기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롤렉스가 현재까지 대체재를 소개하지 않는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Young
Writer
내 꿈은 시계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