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가 성공의 상징이 되는 것에 한 몫 했던 사람들이 있다. 롤렉스 모델 이름은 몰라도, 롤리(Rollie)를 따라부르게 만들었던 그 사람. 더콰이엇을 바이버가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네. 저와 도끼(Dok2)가 상징적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저희가 가장 먼저 롤렉스를 구매했고 또 그걸 자랑했으니까요. 그 전까지 래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계는 주얼리급의 시계가 아니었어요. 저만 해도 돌체앤가바나나 지샥을 차고 다녔어요. 롤렉스가 유행하기 전에는 지샥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칸예웨스트(Kanye West)도 지샥을 차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죠.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미국에서 롤렉스 붐이 불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그걸 받아들인 거죠.
2010년, 2011년 정도였어요. 그때 제이콜(J. Cole)이랑 빅션(Big Sean)이 데뷔를 했거든요. 첫 정규앨범을 내고 그 래퍼들이 롤렉스를 차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앨범 커버를 보면 데이데이트(Day-Date)를 차고 있었죠. 타이가(Tyga)도 마찬가지였고요. 근데 제 입장에선 무슨 신인 래퍼들이 롤렉스를 차지? 이런 느낌이었어요. 사실 제가 그 래퍼들보다 먼저 데뷔를 했거든요. 일종의 자신감 대결 같은 거랄까, 저는 그때 이미 앨범을 4-5장 정도는 낸 상태였기 때문에 저도 해야 되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당시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잘 나간다고 하는 래퍼들도 명품시계를 쉽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벌이는 아니었어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하지만 해보고 싶었어요. 당시 중고가를 기준으로 해도 롤렉스를 산다는게 무모한 짓이긴 했지만 무모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더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었죠.
일반적으로는 그렇죠. 저는 제가 시계 마니아여서 롤렉스를 샀던 게 아니에요. 저는 지금도 시계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냥 그때 저한테 롤렉스가 되게 거대하게 다가왔었어요. 보통 학생들이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수능 공부를 몇 년 간 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느낌의 목표 설정이었던 것 같아요. ‘아, 저걸 사야 되겠다. 지금부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서 저걸 사야 되는구나’라는 굉장히 강한 목표설정이요. 저한테는 그 정도로 되게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래서 그때 적금을 들었어요. 적금을 1년 동안 모아서 롤렉스를 샀죠. 2012년도 가을쯤이었으니까 이제 딱 10년 지났네요.
네. 다 기억나죠. 저한텐 되게 중요한 사건이었거든요. 그때 적금 만기 금액이 1200만원이었어요. 롤렉스를 사고 조금 남았으니까 한 1120만 원 정도에 샀던 것 같아요.
가게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압구정에 있는 명품 취급하는 거래소였어요. 가서 금통 데이데이트를 가리키면서 “아저씨, 이거 저 주십쇼.” 했는데 아저씨 첫마디가 이거였어요. “그거 젊은이들이 차는 거 아닌데”. 그때는 한국에서 금시계가 패션이 되기 전이었거든요. 근데 뭐 어쨌든 저는 그걸 샀어요. 지금 돌아보면 롤렉스에서 어떤 근원적인 걸 발견했던 것 같아요. 힙합과 랩에서의 성취가 제가 살아가는 이유다 보니 저걸 사야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 당시에 제가 했던 것들이 다 이런 마인드에서 비롯됐던 것 같아요.
그렇죠. 큰돈을 벌어서 사치품에 큰돈을 쓰는 게 다수에게 허락된 일은 아니잖아요. 다수가 상상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근데 저는 힙합을 통해서 그런 가치관을 배웠기 때문에 내 모든 걸 걸어서 저런 것들을 얻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저 스스로에게도 당연히 대견한 일이고 그걸 보는 팬들이 저를 보고 저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영감을 얻을 수 있잖아요. 만약 제가 힙합을 몰랐다면, 예를 들어 나스(Nas), 제이지(Jay-Z), 칸예웨스트 같은 래퍼들을 모르고 살았다면 인생이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상상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랩을 하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죠. 롤렉스를 샀던 건 그 확신을 물질로 바꿔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경제관념에 대해 각자의 루트를 통해 배우게 되잖아요. 보통은 집에서 배우는 것 같고요. 그런데 저한테 이걸 알려준 사람은 없었어요. 대신에 저는 원래부터 좀 뭔가에 연연하지 않는 타입이었던 것 같아요. 자기 형편에 비해 비싼 물건을 사도 된다는 사고방식은 말하자면 일종의 배짱인데요, 물론 이 배짱을 배우는 데 저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거부감은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까 사치품을 샀을 때 사람들한테 ‘미쳤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못 하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그 말을 즐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말들을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저는 남들이 대학에 가야 된다고 했을 때 ‘난 안 가도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던 사람이거든요. 소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거죠. 그러면서 돈 버는 방법이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아껴서 잘되는 게 아니라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돈을 잘 버는 거구나 하는 제 나름의 진실을 배웠어요. 예를 들면 저는 10년 전에 50만원을 받는 공연에 100만 원짜리 옷을 입고 갔어요. 명백히 숫자로는 마이너스지만 저는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빠른 속도로 몸값이 올라갔고 이제는 제가 아무리 비싼 옷을 입고 가도 마이너스가 안 나는 값을 받고 공연을 하게 됐죠. 만약 제가 ‘50만 원 받는 공연이니까 나는 5만 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거예요.
너무 좋았죠. 너무 좋아서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렸어요. 이렇게도 올리고 저렇게도 올리고 정말 너무 행복했고 이걸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념하기 위해서 ‘2 Chainz & Rollies’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죠. 물론 제 행동이 줄 반감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어그로를 끌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어그로라는 말이 잘 안 쓰였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런 전략을 썼던 것 같아요. ‘2 Chainz & Rollies’가 나왔을 때도 딱히 좋은 반응은 없었고 ‘노래가 왜 이래요’, ‘가사가 왜 이래’ 같은 반응이 많았잖아요. 하지만 결과는 너무 자명했죠. 그 후 2년, 3년 정도가 지났을 때 저희 주변 래퍼들도 다 롤렉스를 사게 됐고, 나중에는 저희에게 영향 받은 어린 래퍼들도 돈을 벌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소비가 롤렉스 시계였거든요. 그런 게 저는 되게 뿌듯했어요. 저희가 행동과 소비 패턴의 반경을 되게 확장했다고 느꼈거든요. 과거에는 그렇게 돈을 벌었으면 적당히 아껴서 70%는 그래도 저축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살았어요. 그런데 어찌 보면 이 친구들이 부모님한테 배운 경제관념을 깨고 자기 식대로 개척한 것이니까요.
그 때가 좀 상황이 복합적이었어요. 첫 일리네어 전국 투어가 있었고요, 그 투어를 마쳤고 제 적금 만기가 와서 롤렉스를 샀고,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 갔어요.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2 Chainz & Rollies’ 뮤비를 찍으며 이 모든 것을 기념하는 상황이었죠. 라스베이거스에서 엄청 롤렉스를 차고 다니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나요. 왜냐하면 제가 그 전에 라스베이거스를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런 입장이 아니었거든요. 이전에는 성공한 사람의 입장으로 라스베이거스를 간 게 아니었어요. 그때는 롤렉스도 없었고 이런 화려한 액세서리도 없었죠. 그래서 그때 더 대단한 사람이 돼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1년 정도 만에 롤렉스를 차고 다시 오게 된 거예요. ‘2 Chainz & Rollies’가 다른 사람들에겐 그냥 노래일 수 있지만 저한테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되게 큰...
네. 정확합니다. 사운드트랙 같은 거였어요. 장면과 상황과 스토리와 맥락과 기승전결이 다 있는…그때는 뭔가 롤렉스를 중심으로 전개가 됐던 것 같아요. 그게 어떤 고민의 결과 이런 건 아니고 그냥 저희는 느낌이 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여기에 대해서 얘기하면 진짜 끝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 얘기한 건 어떻게 보면 겨우 절반 정도일 수도 있어요.
더콰이엇이 소장하고 있는 롤렉스 시계에 대한 소개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김봉현
Writer
힙합 저널리스트. 하고 싶은 일에 맞는 직함이 없어 새로 만들었고 아직까진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