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적인 인기에 힘입어 형성한 롤렉스의 이미지는 대중적이지만 잘 뜯어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회사입니다. 그 일례가 여전히 솔리드 케이스백을 고수한다는 사실입니다. 극히 일부 시계에 한해 시스루 케이스백을 쓰지만 거의 대부분의 롤렉스 시계에서 무브먼트를 볼 수 없습니다. 견고한 시계를 만들고자 하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보수성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다른 디테일에서도 잘 나타나는데요. 변화가 크지 않은 디자인, 블랙과 화이트를 기본으로 하는 다이얼 색상 같은 부분에서 말이지요. 그런 롤렉스지만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컬러를 통한 변화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출시한 데이토나 Ref. 116519 비치(Beach) 혹은 데이토나 비치는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컬러풀 한 다이얼과 스트랩을 장착한 시계였습니다.
Rolex Daytona 116519 ⓒ amsterdamvintagewatches
비치 에디션이라고 통칭하지만 정식 명칭은 아니며, 스페셜 에디션으로 취급되었던 모양입니다. 화이트 골드 케이스의 Ref. 116519를 기반으로 4가지 색상의 다이얼과 다이얼에 매치되는 리저드(Lizard) 스트랩은 물론 구성품인 박스의 색상과 패턴까지 통일해 비비드하면서 펑키한 매력을 자아냈습니다. 그 당시 데이토나의 다이얼 색상이라고 하면 블랙과 화이트가 기본에 그레이 같은 무채색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상당히 튀어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짧은 기간에 걸쳐 생산한 시계다 보니 그리 많지 않은 수가 시장에서 유통되었는데, 비치 에디션을 선택하는 사람은 과감한 패션 피플이거나 상당히 독특한 감성을 지녔다고 치부되었던 것 같습니다.
ROLEX Daytona 116519 ⓒ amsterdamvintagewatches
색상 별로는 옐로, 핑크, 그린, 블루. 소재 별로는 자개(Mother of Pearl), 크리소프레이즈(Chrysoprase)로 부르는 애플 그린 색상의 칼세도니와 터키석으로 구성됩니다. 옐로와 핑크는 자개, 그린은 크리소프레이즈, 블루는 터키석이었습니다. 모든 색상은 파스텔 톤으로 약간의 투명함을 머금은 다이얼 디테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부 로마자 아워 인덱스를 사용한 점도 특징의 하나입니다.
ROLEX Daytona 116519 ⓒ amsterdamvintagewatches
비치 에디션은 각각 개별 단위 혹은 세트로 구매할 수 있었다고 알려지지만, 세트로 구매한 예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는 단품도 가치가 높지만 4개의 시계를 세트로 구성한 쪽이 높은 수집가치를 지닙니다. 생산기간이 짧아 많은 수가 희소성이 높은 데다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당시 롤렉스에서 등장한 컬러풀 한 다이얼의 시계였기 때문입니다. 결과론 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비치 에디션은 이후의 컬러 다이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Rolex Oyster Perpetual ⓒ Rolex
케이스 지름을 새로 정립하고 인덱스 디테일을 바꾼 새로운 오이스터 퍼페츄얼이 등장했던 2020년에 터콰이즈 블루를 내세우며 다양한 색상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비치 에디션에서 나왔던 옐로, 핑크, 그린, 블루가 전부 포함되어 있었고, 기본 다이얼 색상인 블랙과 실버 등이 더해져 색채의 향연을 펼쳤습니다.
Daytona 116519
40mm, 옐로우/진주자개, 스트랩
Daytona 116519
40mm, 그린/녹옥수, 로만, 스트랩
Daytona 116519
40mm, 핑크/진주자개, 스트랩
오이스터 퍼페츄얼이 솔리드 색상의 컬러 다이얼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면, 데이트 저스트는 선레이 패턴을 머금고 팔레트를 확장했습니다. (지름 36mm 버전을 기준으로) 블랙, 화이트, 실버에 인기가 많은 블루가 다이얼의 기본적인 색상입니다.
ROLEX Datejust, Lady-datejust ⓒ ROLEX
여기에 더한 다크 그레이에 가까운 슬레이트, 발랄한 핑크, 가지를 연상시키는 오베르진(Aubergine)은 대단히 이색적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민트 그린이 추가되어 롤렉스의 브랜드 컬러를 연상시키는 솔리드 그린의 진한 색감과 달리 은은한 색감으로 대비를 이룹니다. 색상은 아니지만 그 외에 마더 오브 펄 소재로 복잡미묘한 색채를 발합니다. 지름 31mm의 여성용까지 범위에 넣으면 그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 집니다. 색상 뿐만 아니라 화려한 그래픽을 거쳐 다양성은 배가 됩니다. 데이트 저스트 에 한정하지 않고 롤렉스 전체의 컬렉션으로 따져 본다면 화이트 컬러라고 하더라도 톤과 패턴을 달리해 미묘한 차이점을 드러냅니다. 다이얼의 색상은 전통적인 전기 도금 외에도 최근 유행하는 PVD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롤렉스의 서브 브랜드인 튜더는 롤렉스와 헤리티지를 공유하고 활용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최근 들어 독자적인 색채를 내기 시작했지만 유사점이 많죠. 다이얼 색상에 있어서도 과거의 롤렉스처럼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블랙, 화이트의 무채색에 블루 서브(Ref. 79090)처럼 블루 다이얼이 조금 튀는 정도였습니다.
Tudor Submariner 79090 ⓒ tudorsub
롤렉스가 오이스터 퍼페츄얼, 데이트 저스트로 다양한 색상의 다이얼을 선보이기 시작한 이후 튜더도 컬러의 문을 활짝 열기 시작했습니다. 블랙 베이 58, 블랙 베이 크로노, 펠라고스 컬렉션에서 두루 활약하던 블루 다이얼은 F1팀인 비자 캐시 앱 RB F1 팀(Visa Cash App RB F1 Team)의 팀원에게 지급하는 시계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판매용 버전인 블랙 베이 세라믹 블루에서 매트한 블랙 세라믹 케이스를 배경삼아 선명한 블루 다이얼을 소개했습니다.
TUDOR Black Bay Chrono m79360n-0019 ⓒ tudorwatch
블랙 베이 크로노 핑크는 핑크 다이얼을 택했는데요. 미국의 축구팀 인터 마이애미 CF는 팀 컬러로 핑크를 택했습니다. 이것은 팀의 공동 소유주인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와 핑크 컬러가 시그니처 컬러인 주걸륜(Jay Chou)을 통해 블랙 베이 크로노 핑크가 정식 발매 전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TUDOR Black Bay Chrono m79360n-0024 ⓒ tudorwatch
최근에는 플라밍고 블루로 이름 붙인 터콰이즈 다이얼의 블랙 베이 크로노가 등장해 핑크 버전과 짝을 이룹니다.
Black Bay Chrono 79360N
41mm, 플라밍고 블루
Black Bay Chrono 79360N
41mm, 핑크
TUDOR Black Bay Harrods M79230G ⓒ tudorwatch
다이얼 외에 베젤도 컬러감을 드러내는 주요한 부분입니다. 대표적인 모델로 브라운 베젤의 블랙 베이 58 브론즈, 차분한 토프(Taupe) 베젤의 블랙 베이 58 925, 그린 베젤의 블랙 베이 18K와 영국 해롯(Harrods) 백화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블랙 베이 해롯 에디션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블랙 베이 해롯 에디션은 그린 베젤과 길트 다이얼, 골드 컬러의 핸즈와의 선명한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튜더는 최근의 이와 같은 신제품을 통해 소개된 컬러감으로 롤렉스와 함께 다채로운 색채라는 테마를 더욱 강화하며, 시계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Black Bay 79230G
41mm, 블랙, Harrods 스페셜 에디션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