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적으로 전혀 필요 없는, 그럼에도 평균 판매가는 4천만 원을 넘는 시계가 매년 100조 원 가량 판매됩니다(신품과 중고 시장의 합산 규모). 차도 좋아하고 옷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시계와는 거리를 둘거라 약속했던 저는(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결국 시계에 푹 빠져 이제는 시계로 덕업일치를 하였습니다.
도대체 시계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시계 생활에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피로하지 않으신가요, 매 순간이 놓치면 안 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일상이? 스마트폰이 있기 전에는 어느 기기의 전원을 켜서 정보통신망에 연결을 해야 비로소 세상과 소통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반면 지금 우리의 눈은 고정형, 이동형, 착용형, 소형, 대형, 개인용, 상업용 스크린에서 쉴 새 없이 꼭 알아야 하는, 놓치면 아쉬운, 모르면 ‘아싸’가 된다는 소식과 콘텐츠를 보게 됩니다.
제가 스마트워치를 기피하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손목은 나에게 가장 유용하면서도 퍼스널 한 공간인데 여기까지 디지털 기기의 침범을 허용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 자리에는 시계라는 작은 창문이자 액자를 놓아 꿈과 추억, 잠깐잠깐 바라보며 휴식을 찾고 싶습니다.
그런데 신기하죠? 시계 컬렉터들은 추억, 브랜드나 시계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 옛날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그 이유가 ‘속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는 ‘천천히’의 희소성과 그 매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속보, 간편 결제와 당일 배송의 삶을 살고 있고 심지어 3분 전에 보낸 이메일에 빨리 답변하라는 카톡을 실시간으로 받습니다.
물론 빠르고 효율적인 것은 좋죠. 노력을 덜어주고 더 빠르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역으로 모든 결정을 너무 쉽고 가볍게 내리지 않나 싶습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충동 구매 후 사용하지 않을 뿐더러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까먹고 있는 물건이 점점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그래서 컬렉터들은 시계를 좋아합니다. 만사가 ‘천천히’이니까요. 기술과 디자인은 거의 50년간 대단한 변화가 없었고 가격 대가 높은 만큼 모든 구매 결정은 신중한 고민을 전제로 하죠.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이나 출산, 첫 보너스, 사업의 큰 성공과 같은 삶의 마일스톤을 기념하기 위해서 시계를 구매 하니까요.
추억의 갤러리와 같은 이 작은 물건은 왜 비쌀까요? 만들기가 어려우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이 글을 다 읽으시는 약 5분 동안 시계는 300초가 지났을 때를 정확하게 가리키기 위해 2,400번의 ‘째깍째깍’을 해냅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간의 시계의 활동량은 암산으로 산출을 못 하겠네요.
고맙지 않나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어느 작은 태엽이 감겨(쿼츠는 어느 크리스털이 진동을 하여) 그 풀리는 힘이 기어와 레버를 정확한 속도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준다는 것이요. 온 세상이 ‘0’과 ‘1’의 계산으로 결정되는 디지털 홍수 속에서 시계의 존재는 제가 뒤통수에 전선이 꽂혀 헛된 세상에 대한 가짜 ‘꿈’을 꾸고 있는 인간 배터리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기도 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1986년에 태어난 저는 2066년에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합니다. 반면 결혼을 기념으로 어머니가 아버지께 예물로 드린 레퍼런스 16800 롤렉스 서브마리너 데이트는 한참 더 남아 있을 겁니다. 아니, 그때도 지금 못지않게, 아버지가 처음 받으신 그날 못지않게 특별함을 지킬 겁니다.
시계는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기계니까요. 시간을 측정하라고 만든 기계가 세월의 흐름 속에 망가지고 부서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시간을 측정하고자 태어난 시계가 시간을 이겨낸다는 것, 얼마나 멋진가요?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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