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내외로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계시장은 팬데믹 시기의 광적인 하입(Hype)이 종료되며 많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2024년은 팬데믹을 정산하는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하입의 정산서, 트렌드 두 가지 키워드로 2024년의 시계시장을 되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세계에 선언되고 부정적인 지표가 시계업계를 덮칠 거라는 부정적인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팬데믹에 따른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더디어 지고 실제로 스위스의 시계공장은 코로나 확산으로 일시적인 폐쇄를 하며 생산성도 극히 악화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각국은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찾고, 방향을 찾지 못하던 유동성이 유입되며 시계시장은 여태껏 맛보지 못했던 활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방역을 위해 폐쇄된 각국의 국경은 여행과 외식 수요를 급 감소 시켰습니다. 리벤지 소비의 방향은 럭셔리로 향했고, 대표적인 아이템인 시계로도 커다란 유동성이 향했습니다. 인기가 많았던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의 수요는 이전보다 훨씬 커졌지만 빠르게 공급을 늘릴 수 없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하거나 대체 제품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대표적으로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는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의 좋은 대체재였습니다. 3세대에 접어들면서 상품성과 편의성을 강화하며 무르익은 현재의 오버시즈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게 됩니다. 하입을 주도한 일체형 브레이슬렛을 가진 스포츠 워치가 주목 받습니다.
지라르 페르고(Girard Perregaux)의 라우레아토(Laureato)는 솔직히 컬트워치에 가까웠지만 하입의 큰 수혜를 입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약했던 블랑팡이나 대표 제품인 피프티 패덤스 같은 하이엔드 다이버 워치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브레게의 파일럿 워치 타입(Type)이나 마린(Marine)도 눈에 띄는 하나가 됩니다. 하입은 진흙 속에 감춰진 아름다운 진주를 발굴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Overseas 4500V/110A-B126
41mm, 실버
Overseas 4500V/110A-B128
41mm, 블루
Overseas 4500V/110R-B705
41mm, 블루
인지도, 특정 제품에 편중된 수요는 유동성이 사라지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현 시점,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또는 팬데믹 이전보다 좋지 않은 판매 상황과 마주하는 시계회사가 많아 졌습니다. 뉴 노멀로 규정했던 팬데믹 시점과 현재의 온도차가 큰 시계회사가 적지 않습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지라르 페르고나 크로노마스터로 팬데믹 특수를 맛봤던 제니스(Zenith)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세컨드 마켓으로 가면 정산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들 시계의 거래량 감소와 인지도가 악화되며, 특정 시계회사와 제품으로의 쏠림이 더욱 강해집니다. 유동성이 만들어 낸 풍요로운 선택의 폭과 거래의 자유도가 급격하게 쪼그라든 것이죠.
하입을 거치며 시계는 이제 단순히 럭셔리 소비재에서 투자자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이 생산시설의 규모가 작고 부가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시계산업을 육성했던 것과 같이 시계는 부피가 작아 보관이 쉽습니다. 보관만 잘 한다면 상품성이 쉬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동산이나 자동차처럼 취득세나 연간 발생하는 세금도 없습니다. 하이엔드 워치의 예술성 넘치는 시계들은 마치 예술품과도 비슷한 감각으로 투자할 수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의 확대로 접근이 쉬워졌습니다. 물론 훌륭한 취미이기도 합니다.
2024년 시계시장에서 드러난 트렌드는 지난 몇 년과 비교해 큰 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결정체인 컴플리케이션에서 도드라지는 제품이 없었지만 질적, 양적으로 무난했습니다. ‘전통적인 형태와 기능을 따른다’는 하나의 축과 ‘형식을 깨고 도전적인 메커니즘에 추구’하는 또 하나의 축이 컴플리케이션 분야를 떠 받쳤습니다.
전자가 바쉐론 콘스탄틴 더 버클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The Berkeley Grand Complication)이라면 후자는 피아제의 알티플라노 울티메이트 컨셉트 투르비용(Altiplano Ultimate Concept Tourbillon)이 해당될 것입니다. 더 버클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은 케이스 앞과 뒤를 가리지 않고 63개의 기능으로 채우고 최초의 중국력 퍼페츄얼 캘린더 기능을 구현했습니다.
알티플라노 울티메이트 컨셉트 투르비용은 케이스, 무브먼트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파괴하고 새롭게 정의해 두께 2mm의 초박형 투르비용을 완성했습니다.
짧게 본다면 15년, 길게 보면 20년 이상 계속된 복각(Re-issue) 흐름은 이제 흐름을 떠나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의 제품을 완전히 그대로 되살리건 디자인에 집중하건 과거를 현재 세대에 선명하게 보여 주고자 합니다. 컬러를 사용한 색깔놀이도 빼놓을 수 없죠. 블루, 그린 다이얼의 강세는 파텍 필립에서 오랜만에 새로 등장한 컬렉션인 큐비터스(Cubitus)와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에서 잘 드러납니다.
시계시장에 완전히 안착한 에르메스, 루이비통과 같은 패션회사들도 도드라집니다. 시계시장에서 변방에 불구했던 이들은 패션에서 쌓아 올린 디자인 아카이브와 전통을 무기로 시계 디자인을 완성하고, 막강한 자본을 활용해 시계생산 능력을 갖췄습니다. 다소 엄근진한 시계업계가 시도하지 않았던 자유로운 아이디어와 유연함을 시계 속에 녹여냈습니다. 이들의 신선함은 앞으로 시계업계의 또 다른 원동력으로 작동할 것 같습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주요시장인 중국과 홍콩에서 스위스 시계 수입이 크게 감소 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두 자리 수 퍼센트포인트로 큰 하락을 보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 중국과 홍콩이 스위스 시계의 상승세를 이끌어 왔기 때문에 상당히 아플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시장에서 수입이 늘어나며 충격을 일부 완충했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지표는 아니었죠. 우리나라는 경제적 불확실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시계 구매가 소극적인 추세로 돌아섰습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되살아 나야 시계 구매도 다시 활발해 질 텐데요. 현재의 경제상황에 비춰봐서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지만, 무릇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내려가는 때가 있고, 반대로 내려갔으면 다시 올라오는 흐름이 있기 마련입니다. 2025년에는 모쪼록 시계애호가들은 더 나은 시계생활이 가능하기를 바라며 2024년의 마지막 글을 마무리 해 봅니다. 그럼 모두들 편안한 연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