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짝사랑했던 첫사랑(?)이었다. 사진 한컷으로 나를 사로잡고 꿈속까지 장식했던... 시계는 Cartier Santos 100이었다. 라운드 쉐입이 아니어서 신선한 충격을, 터프한 크라운가드와 길쭉하고 섬세한로만 인덱스의 대조가 인상 깊었고 (무슨 자신감에서?) 멋지게 찰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학생이던 나에게 이 시계는 잡지속의 연예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로부터 20년이나 되는 세월이 흘렀는데(이렇게 나이를 공개하고) 산토스는 매번 잊혀질 듯 하면 나타나 그때의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내가 얼마나 산토스를 좋아하였었는지를.
산토스의 존재감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클래식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글에서는 내가 갖지 못한 이 시계의 식지 않는 인기에 대하여, 뒷북이라도 치는 마음으로, 적어 본다.
사격형 시계가 대세다. 물론 절대 거래량에 있어 손목시계의 ‘주류'는 라운드 쉐입 이다(특히 혼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롤렉스가 라운드 시계만 만들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아이콘'으로 인정하는 시계들을 케이스 쉐입별로 분류해 보면 의외로 사각형 시계들이 많다; 까르띠에의 탱크, 팬더, 산토스를 비롯하여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아쿠아넛, 태그호이어의 모나코와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도 등.
특히 리베르소와 탱크는 근래 유행하는 콰이어트 럭셔리 트렌드와 함께 ‘점잖은 드레스 워치'로서 인기가 급격히 높아졌고 이 시계들의 시세 또한 다른 시계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사각형과 타원형 사이 모호한 ‘엘립스’ 쉐입의 파텍필립 골든 엘립스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근 들어 ‘사각형 시계’ 하면 빠질 수 없는 파텍 필립의 큐비터스(Cubitus); 이름부터 ‘큐브+노틸러스’인 이 정사각형 시계는 근래 최대의 이슈메이킹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큐비터스가 가장 많이 비교되는 모델이 노틸러스와 함께 까르띠에의 산토스라는 것이다.
게다가 산토스는 All-In-One 시계이지 않은가? 섬세하면서도 터프 해 보이는 디자인 덕분에 누구는 드레스워치로 누구는 스포츠워치로, 누구는 두 매력을 모두 즐기며 찬다.
또한 성별에서도 산토스의 포지셔닝은 흑백논리로 설명이 어렵다. 남자를 위해 태어난 시계인데 여성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물론 많은 까르띠에가 그렇지만) 시계가 과연 몇개나 될까? 아! 참고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남성분들, ‘내가 좋아하는 시계’는 내무부장권의 허락이 어렵지만 ‘그녀도 좋아하는 시계’는 생각보다 설득이 쉽다.
또한 산토스는 그 무엇보다 ‘까르띠에’다. 까르띠에 만큼 전방위적으로 사랑받는 시계가 있을까? 브랜드의 이미지 자체부터 다른 워치메이커들과는 다르다. 통상적으로 스위스 시계들이 ‘기능의 우수함’ 혹은 ‘물려 주는 자산’으로 포지셔닝되어 능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과 달리 까르띠에는 아름다움과 로맨스가 셀링포인트다.
그렇다면 어떤 산토스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릴까? 우선 산토스는 크게 ‘Santos Dumont(산토스 뒤몽)’과 ‘Santos de Cartier(산토스 드 까르띠에)로 분류된다.
육안 상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크라운가드의 유무다. 조금더 섬세한 룩의 산토스 뒤몽은 크라운 가드가 없고 대신 더 뾰족한 Cabochon(카보숑, 끝에 장착된 블루 사파이어)이 돋보인다. 반면 조금 더 스포츠워치로 포지셔닝된 산토스 드 까르띠에의 견고한 육각형 크라운은 ‘제 2의 러그’ 처럼 생긴 크라운가드가 보호하고 있다.
만약 정통성을 강조하는 컬렉터라면 뒤몽이 더 어울릴 것 같다. 1904년에 최초로 등장한 산토스부터 일단 크라운가드가 없었다. 그리고 희소성이 높은 빈티지 산토스들 또한 뒤몽과 더 디자인이 가깝다.
반면 경영난에서 까르띠에를 되살린 산토스는 1978 출시된 Santos Carree(산토스 카레아)부터 ‘산토스 드 까르띠에’라 불렸다. 만약 조금 스포티한 룩을 좋아하거나 뒤몽의 디자인이 너무 드레스워치 스럽다고 생각하는 구매자들에게 더 적합하다.
산토스 드 까르띠에는 대중성을 높이고자 과거 귀금속으로만 만들던 산토스와 달리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베젤과 브레이슬릿의 나사는 옐로우 골드) 시계로 출시 되었다. 그리고 케이스 쉐입 만큼 디자인이 독특한 브레이슬릿도 이때 함께 등장했다.
2004년부터는 산토스 드 까르띠에처럼 크라운가드가 있지만 금속 브레이슬릿이 아닌 스트랩으로만 출시된 산토스 100이 나왔었다(그리고 내가 사랑에 빠진 시계도 이 버젼이었다).
개체수로 따지면 산토스 드 까르띠에가 뒤몽보다 약 두배정도 많다. 뒤몽보다는 더 대중적으로 포지셔닝한 카레아와 그 뒤를 이어 1987년에 출시된 Galbee(갈베아)는 2016년에 단종될 만큼 매우 오랜 기간 판매가 되었었다.
그렇다고 뒤몽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까르띠에는 뒤몽의 계보를 소량 생산되는 귀금속 모델로 계속 이어왔고 1998년에는 까르띠에의 벤츠 AMG와도 같은 CPCP(Collection Prive Cartier Paris) 에디션의 뒤몽을 선보이기도 했다.
산토스의 가격대는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희소성이고 그 다음은 연식이라 볼 수 있다. 우선 기준점을 설정하기 위해 현행 모델의 가격을 정리해보자.
현행 산토스 드 까르띠에은 사이즈와 무브에 따라 1,010만 원부터 2,000만 원까지 있고 소재와 한정판에 따라 높게는 1억원까지 있다. 그리고 뒤몽은 560만 원부터 3,200만 원까지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중고 시계를 구한다면 현행 모델의 중고 시계들의 경우 ‘드 까르띠에’와 ‘뒤몽’모두 약 550만 원부터 2,500만 원사이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구형 버젼인 갈베아와 카레아의 경우 300만 원부터 1,000만원 사이에 거래가 되며 산토스 100은 500만 원부터 2,500만 원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Santos MM WSSA0029
41.9mm x 35.1mm, 실버
Santos Galbée XL W20098D6
45mm x 32.72mm, 실버
Santos Galbée LM W20011C4
29mm x 29mm, 실버
물론 더 귀한 CPCP나 빈티지 산토스(1978년 이전 출시된 ‘오리지널’ 버젼)의 시세는 수천만 원대로 판매된다.
종류가 어떠하던 산토스를 착용하는 사람은 디자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확고한 취향이 있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롤렉스, 혹은 기타 라운드 쉐입의 시계가 아닌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가성비나 환금성 보다는 내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에 충실한 사람이니까(물론 환금성도 롤렉스의 데이데이트나 요트마스터, 에어킹, 그리고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와 맞먹는다).
이제 남은 일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혹은 나의 소중한 누군가에게 어떤 산토스를 사줄지만 결정하면 된다.
Santos Dumont W2006951
44.6mm x 34.6mm, 실버
Santos Dumont LM WSSA0022
43.5mm x 31.4mm, 실버
Santos Dumont XL Limited Edition WGSA0082
46.6mm x 33.9mm, 아이보리
Santos 100 LM W20072X7
38mm x 41mm, 실버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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