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를 떠나가는 래퍼들?!
롤렉스와 힙합 두 번째 이야기
ROLEX

이 글은 <래퍼들의 롤렉스 사랑>에서 이어집니다.

롤렉스는 어떻게 힙합의 상징이 되었나?

왜 다른 시계 브랜드가 아닌 롤렉스일까. 왜 롤렉스가 힙합의 상징적인 시계 자리를 꿰차게 된 걸까. 물론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맥락을 추측해볼 단서는 존재한다.

ⓒ run DMC

ⓒ run DMC

사실 힙합과 시계의 관계 자체는 꽤 오래된 일이다. 우리는 80년대를 대표하는 래퍼들의 사진 속에서 여러 종류의 시계를 찾아낼 수 있다. 엘엘쿨제이(LL Cool J), 라킴(Rakim), 이피엠디(EPMD), 런디엠씨(Run DMC) 등은 모두 (비싼) 시계와 친했고 그들의 몸에는 시계 뿐 아니라 많은 ‘금붙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80년대 래퍼들의 스타일을 가리켜 당시 흑인 마약상들의 패션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흑인 마약상들은 당시 지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가장 비싼 옷을 입고 고가의 악세사리를 몸에 치장하고 다녔고, 그들의 스타일은 곧 선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힙합 & 롤렉스를 대표하는
두 아티스트

롤렉스가 본격적으로 힙합을 상징하는 시계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90년대를 지나면서였다. 90년대는 힙합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한 시대였고 이 시대에 성공한 래퍼들은 자연히 전보다 더 큰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 guardian.ng

ⓒ guardian.ng

90년대에 롤렉스를 힙합계에 가장 선명하게 각인시킨 래퍼는 바로 투팍(2Pac)과 노토리어스비아이지(Notorious B.I.G, 이하 비기)였다. 이 둘은 롤렉스를 논외로 하더라도 가장 유명한 래퍼들이지만 롤렉스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GQ

ⓒ GQ

투팍과 비기는 둘 모두 20대 초중반에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동안 선망했지만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손에 넣는다. 실제로 쿠지(Coogi) 스웨터를 입고 베르사체(Versace) 선글라스를 쓴 채 지폐를 세고 있는 비기의 사진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성공을 압축해서 드러낸 한 장이었기 때문이다.

ⓒ Getty Images

ⓒ Getty Images

그러나 그만큼 유명한 사진이 또 있었으니, 바로 비기가 옐로골드 롤렉스 데이데이트를 손목에 차고 있는 사진이었다. 실은 한 장만이 아니고 여러 장에서 목격되긴 했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여러 노래에서 (당연히) 롤렉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노래는 ‘Mo Money Mo Problems’다. “Where the true players at? Throw your Rollies in the sky (진짜들은 다 어디 있어? 니 롤렉스를 하늘 위로 올려봐)”

ⓒ All Eyez On Me : 2PAC

ⓒ All Eyez On Me : 2PAC

투팍은 한술 더 떴다(?). 투팍은 아예 롤렉스를 찬 채로 앨범커버를 촬영했다. 1996년에 발표된 [All Eyez on me]는 투팍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작이자 힙합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명반이다. 그리고 이 앨범의 커버에는 롤렉스를 찬 투팍이 등장한다. 나는 이 앨범커버가 후대에 안긴 파급력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Day-Date 36 118238

Day-Date 36 118238

36mm, 샴페인, 프레지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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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래퍼들이 롤렉스를 구입한 후 그것이 힙합의 ‘전통’이라고 말하는 광경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투팍과 비기, 그리고 90년대 이후 등장해 큰 성공을 거둔 래퍼들이 정립한 문화 속에서 자랐던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지-이지(G-Easy)는 GQ의 유튜브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롤렉스에 대해 말하는 힙합 음악을 들으며 자랐어요. 롤렉스는 성공으로 가는 여정 속의 벤치마크 같은 존재예요. 이 시계를 얻는 건 마치 성배를 들어 올리는 느낌이었죠.”
(인터뷰 원본 : 여기를 클릭)

Day-Date 40 228238

Day-Date 40 228238

40mm, 화이트/로만, 프레지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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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의 시대는 저물기 시작한 것일까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아니,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다. 롤렉스를 떠나는(?) 래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롤렉스보다 더 등급이 높고 더 비싼 시계를 차고 다니는 래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에 관한 좋은 예는 미국으로 갈 것도 없이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 사이먼 도미닉은 지큐코리아의 유튜브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돈 벌었을 때는 롤렉스를 끼고 다녔는데 요즘에는 레벨업해서 리차드밀,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이 세 개를 되게 좋아해요."
(사이먼 도미닉의 인터뷰 원본 : 여기를 클릭)

어찌 보면 좋은 일이다. 형편(?)이 더 나아졌으니 더 등급이 높고 더 비싼 시계를 차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이 말은 지금까지 래퍼들이 롤렉스를 찼던 이유가 어쩌면 그들의 성공이 롤렉스 등급 정도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사이먼 도미닉이 레벨업했듯 요즘 미국 래퍼들의 노래에도 롤렉스가 아닌 다른 시계 브랜드가 눈에 띈다. 팝스모크(Pop Smoke)의 ‘AP’는 좋은 예다. 제목만 보고 이미 알아챈 이도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오데마피게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래퍼들이 롤렉스를 떠나는 이유에는 다른 것도 있다. 더콰이엇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아무래도 힙합이 다른 장르에 비해서도 특히 유행에 민감한 젊은 장르잖아요. 유행하는 단어, 가사, 주제 등이 때마다 계속 바뀌죠. 돌이켜보면 래퍼들이 한창 롤렉스를 자랑하던 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일이에요. 시계 자랑 유행이 10년 간 버텨왔다는 건데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건 아닌가도 싶어요. 그런데 저는 유행과 무관하게 롤렉스를 계속 차고 다니긴 할 거예요. 이건 저에게 클래식이거든요. 에어조던과 롤렉스는 저에게 클래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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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현재 힙합을 이끄는 젊은 세대가 그 윗세대와 여러 모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실제로 2010년대 중반 즈음부터 등장한 힙합의 흐름은 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 시기 즈음부터 두드러진 힙합의 사운드 및 메시지가 그 전까지 존재해온 힙합의 그것들과 많은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랩보다 노래에 치중하는 래퍼들, 시종일관 걸려 있는 오토튠, 힙합이라기보다는 록에 가까운 사운드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음악에서 드러나는 젊은 래퍼들의 우울감과 좌절감, 그리고 자기파괴적인 메시지와 약물 의존성이었다. 롤렉스가 힙합을 상징하는 시계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힙합이 기본적으로 상승 지향적인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자, 더 나은 삶을 쟁취하고 그 전리품으로서 롤렉스를 손목에 차자는 것이 래퍼들의 태도였다.

영원한 힙합의 클래식, 롤렉스

하지만 최근의 힙합음악에는 이런 상승 지향적인 특성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에 젊은 래퍼들은 우울과 싸우며 그걸 음악에 담아내고, 어떤 래퍼들은 우울을 이겨내기 위해 복용해온 약물 때문에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맥밀러(Mac Miller)와 릴핍(Lil Peep)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롤렉스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아니, 다시 균형을 갖춰서 말하자. 롤렉스가 들어설 자리가, 많이 좁아졌다.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롤렉스의 시대가 다시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더콰이엇의 말처럼 롤렉스는 앞으로도 영원히 힙합의 클래식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붐뱁의 시대는 갔지만 붐뱁은 힙합 사운드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영원히 남게 될 것처럼 말이다. 갑자기 더콰이엇이 나에게 해준 또 다른 말이 떠오른다. “롤렉스는 저에게 ‘해냈다’는 증표였어요. 말하자면 이 사회의 전리품이었죠. 아, 그런데 저는 롤렉스로 시간은 보지 않아요. 시간은 핸드폰으로 보죠.”

김봉현

Writer

힙합 저널리스트. 하고 싶은 일에 맞는 직함이 없어 새로 만들었고 아직까진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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