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겨울이 올까 싶을 만큼 따뜻한 가을이 이어지더니 단숨에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시계의 계절감은 여름으로 대표됩니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수영장, 강과 바다처럼 물을 접하는 시기이므로 방수성능이 높은 다이버 워치가 여름 시계의 대표 주자죠. 반대로 겨울 시계라면 다이버 워치처럼 계절과 깊은 연관성은 없지만, 날이 추워지니 아무래도 덜 차갑게 느끼는 시계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럼 겨울에 착용할 따뜻한(?) 시계를 찾으러 가볼까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골드 케이스 + 같은 소재의 브레이슬렛 + 솔리드 백의 조합은 완전히 금속만으로 이뤄집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조합의 시계를 착용하면 얼어붙는 듯한 차가움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지도 모릅니다. 롤렉스의 서브마리너는 여름 시계의 대표적인 하나지만 가장 차가운 조합의 대표격이기도 합니다.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시스루 백이라면 손목에 직접 닿는 부분이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대체되어 차가움이 상당부분 경감될 수 있겠지만, 견고한 솔리드 백이라면 차가움의 끝판왕입니다. 가장 차가운 조합이지만 착용을 하면서 신체의 열을 전달받으면 따뜻하게 달궈(?)지는 반전의 특성도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골드 외에 티타늄 소재의 케이스 + 브레이슬렛 + 솔리드 백은 어떨까요? 금속이기 때문에 체감하는 차가움은 마찬가지겠지만 열 전도율은 강철의 1/7에 불과합니다. 즉 착용하고 있더라도 열이 전체로 잘 퍼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더 차갑게 느껴지는 금속입니다. 시계 소재로 사용하는 금속에서 가장 차가운 조합이라면 티타늄 케이스 + 브레이슬렛 + 솔리드 백이 될 것 같습니다. 가벼운 소재의 경쾌함과 달리 열 전도율은 그 반대의 느낌입니다.
‘가장 차가운 조합’에서 브레이슬렛을 러버, 가죽, 나토(NATO), 패브릭 스트랩으로 바꿉니다. 시계에서 피부에 닿는 면적이 가장 넓은 브레이슬렛을 이런 스트랩으로 교체하는 방법으로 차가움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땀 때문에 축축하게 젖어 있던 가죽 스트랩은 겨울에는 뽀송뽀송한 데다가 따뜻하기까지 합니다.
러버 스트랩은 계절 무관하게 좋은 촉감과 온도감을 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손목에 착하고 달라붙는 착용감은 말할 필요도 없죠. 나토나 패브릭 소재도 겨울 친화적(?)입니다.
솔리드 백 대신 시스루 백을 고른다면 차가움은 한결 누그러집니다.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은 시스루 백을 택해 Cal. 8800의 빛에 따라 역동성을 드러내는 아라베스크(Arabesque)풍 제네바 웨이브 피니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브레이슬렛 대신 러버나 나토 스트랩과 조합을 이룬다면 다이버 워치지만 겨울에도 꽤 착용할 만합니다.
앞서의 조합을 봤을 때 피부에 닿았을 때 차가움을 전달하는 주범은 금속 소재라는 결론입니다. 그럼 비금속 소재를 택한다면 차갑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시스루 백에서 힌트를 주었던 사파이어 크리스털은 피부에 닿으면 잠깐 차갑지만 이내 체온을 머금습니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렛을 풀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만들면 겨울에도 찰 만하지 않을까요?
위블로 빅뱅 인테그레이티드(Big Bang Integrated) 투르비용 사파이어나 빅뱅 인테그레이티드 투르비용 풀 퍼플 사파이어 같은 모델이라면 소름 돋는 온도감에 몸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의 높은 경도로 쉽게 표면에 상처가 나지 않을 뿐더러 투명한 연체동물처럼 구조를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풀 사파이어 케이스는 가공의 어려움 때문에 소수의 시계회사가 만들고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보급형 사파이어 크리스털 시계로 위블로의 빅뱅 유니코 사파이어가 있습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브레이슬렛 대신 러버 스트랩을 사용해 가격이 빅뱅 인테그레이티드 투르비용 사파이어에 비해 낮지만 절대적인 가격은 고가에 속합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에 비해 가격면에서도 좋은 소재가 세라믹입니다. 시계 소재로 사용된 지 오래되어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역시 비금속 소재로 특유의 광택감과 컬러감도 특징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크롬 성분에 의한 알러지를 일으키지 않아 그 대체제로 소개된 적도 있죠. 표면 경도가 높아 상처가 잘 나지 않지만 큰 충격을 받으면 깨지면서 복원이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브레이슬렛까지 세라믹인 시계를 착용하면 그리 차갑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온기를 머금습니다. 차가움이라는 관점에서 본 단점은 케이스 백을 티타늄 같은 금속 소재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차가움을 피하기 위한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세라믹 소재의 IWC 파일럿 워치 크로노그래프는 케이스 백과 크라운, 푸시 버튼을 티타늄으로 만들어 힘을 받는 부분을 강화했으나 그 때문에 차갑게 느껴집니다.
사실 금속이 자체적으로 열을 내지 않는 이상(금속이 스스로 열을 낸다면 위험합니다) 따뜻한 조합은 없을 겁니다. 상대적인 이미지로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건데요. 따뜻한 조합에 가장 접근한 소재는 카본이나 플라스틱 계열 같습니다. 오메가X스와치의 바이오세라믹 소재도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요. 바이오세라믹은 플라스틱, 즉 폴리머 소재를 상당부분 함유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오메가X스와치의 문스와치나 블랑팡X스와치의 스쿠바 피프티 패덤스를 착용하면 어떤 온도 건 간에 관계없이 차가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카본도 낮은 온도를 피부에 전달하지 않는 편입니다. 카본 필라멘트를 틀에 넣고 고온고압으로 성형해 얻어내는 포지드 카본(Forged Carbon) 케이스를 업계 최초로 도입한 오데마 피게는 이것을 많은 로열 오크 오프쇼어 모델에 투입했습니다. 각 개체마다 나타나는 유니크한 패턴과 카본 특유의 강인함을 잘 살려냈는데요.
최근에 발표한 로열 오크 컨셉트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GMT 라지 데이트 43mm는 CFT 카본 케이스를 들고 나왔습니다. 포지드 카본과 유사해 보이는 CFT 카본은 카본의 블랙 컬러 외에 푸른색이 마블링되어 있습니다. 어두워지면 마블링 된 부분이 빛을 내어 촉감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따뜻함을 전하는 소재입니다.
추운 겨울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차가움이 덜한 나만의 조합을 찾아 겨울나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아니면 카본 같은 경험하지 않았던 소재를 새로 영입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Pilot's Watch Automatic 36 IW324008
36mm, 블루
Pilot's Watch Mark XVIII "Hodinkee Edition" IW324801
39mm, 블랙
Pilot's Watch Chronograph Top Gun IW389101
44.5mm, 블랙
Pelagos 39 25407N
39mm, 블랙
Seamaster Diver 300M 210.30.42.20.03.001
42mm, 블루
Big Bang Unico Black Magic 411.CI.1170.RX
45mm, 블랙/오픈워크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