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에서 상승과 하락이라고 하니 주식이나 채권 같은 투자요소의 상승장, 하락장처럼 보이지만, 시계 케이스 지름의 상승(커짐)과 하락(작아 짐)을 뜻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쯤 전의 시계시장에서 가장 핫 한 트렌드는 뭐니뭐니해도 시계가 얼마나 커질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무렵 40mm 초반의 스포츠 워치는 45mm를 돌파해 47mm 지름도 흔히 등장했고 화끈하게 50mm를 넘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세는 4,5년이 지난 시점에 크게 꺾였고 2020년에 접어들면서는 지름의 다양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케이스의 지름이 급격하게 커지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보다 손목시계가 만들어 진 이후로 케이스 지름의 변화가 거의 없었던 점이 오히려 이례적일지도 모릅니다. 보통 케이스의 지름은 탑재한 무브먼트의 지름과 연관성이 있었습니다. 무브먼트의 지름에 맞춰 케이스의 지름을 결정했기 때문에 지름 25mm 대의 무브먼트라면 케이스는 36~38mm 정도로 결정되곤 했습니다. 내충격성이 고려되는 스포츠 워치는 그보다 크고 두꺼운 케이스를 택해 지름 40mm 정도가 보통이었습니다.
케이스 지름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무브먼트 지름에 맞춘 케이스 지름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은 크게 흔들립니다. 원하는 수치로 빠르게 바꿔 만들 수 있는 케이스에 비해 무브먼트는 그렇지 못합니다.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 한번 개발한 이후에도 계속 수정과 개량을 하며 사용하는 무브먼트이기 때문에 케이스처럼 기민한 대응은 어렵죠. 그 괴리는 2010년을 경계로 발표한 드레스 워치에서 잘 나타납니다.
파텍 필립의 칼라트라바 Ref. 5196의 케이스 지름은 37.5mm, 탑재한 핸드와인딩 무브먼트 Cal. 215의 지름은 21.9mm로 그 갭은 무려 15mm가 넘습니다. 케이스 지름이 1, 2mm 커지면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상당하죠. 그 결과 칼라트라바 Ref. 5196은 다이얼 6시 방향의 스몰 세컨드와 바 인덱스가 공존합니다. 보통 스몰 세컨드가 달리면 그 위치의 인덱스가 사라지는 현상(?)이 없습니다.
전 세대이자 같은 무브먼트를 탑재하는 칼라트라바 Ref. 3796의 6시 방향 인덱스가 없는 사실로 잘 알 수 있고, 다이얼 밸런스만 본다면 Ref. 3796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단종된 오데마 피게 쥴 오데마(Jules Audemars) 핸드와인딩 Ref. 15056도 칼라트라바 Ref. 5196처럼 스몰 세컨드와 인덱스가 공존합니다. 탑재한 Cal. 3090이 당시로는 최신 설계였지만 케이스 지름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의 작은 사이즈였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도 지름이 작은 Cal. 1400을 내놓았지만 부랴부랴 지름과 파워리저브를 키운 Cal. 4400을 내놓게 됩니다.
2015년 즈음에는 한없이 커지던 케이스 지름에 제동이 걸리게 되는데요. 상승에 대한 반발로 하락이 시작됩니다. 시기적 상황을 보면 중국시장의 영향이 커지면서 그들 수요에 맞는 변화가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랑에 운트 죄네는 40mm로 커진 1815의 지름을 1.5mm 줄여 38.5mm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고, 피아제의 알티플라노는 지름 43mm로 드레스 워치치고 상당한 사이즈를 자랑했지만 핸드와인딩 버전에서 38mm로 밸런스를 추구하게 됩니다. 당시 예거 르쿨트르도 마스터 컬렉션이 40mm 초과에서 일부 38.5mm를 내놓으며 오버사이즈 시대의 폭주는 진정세에 접어듭니다.
요즘 케이스 지름은 그다지 주목받는 트렌드 요소가 아닙니다. 2010년대 눈에 띄게 커지던 지름이 2010년대 중반을 경계로 꺾이게 되었고, 그 시점에 파생된 형태로 같은 모델을 두 가지 사이즈로 소개하는 방식이 소수 시계회사에서 시도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전 수준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케이스 지름이 작아졌고 안정기에 접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또 1990년대와 비교하면 사이즈가 다양해 진 것 역시 사실입니다.
시계업계의 ‘사이즈 지표계’와 같은 까르띠에는 요즘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중세 욕조에서 영감을 받아 볼륨감과 곡선을 자랑하는 베누아(Baignoire), 팬더(Panthère), 탱크 워치에서도 두 종의 미니(Mini) 사이즈를 내놓았습니다. 까르띠에 시계에서 남녀 평등한 특성은 상당수의 컬렉션이 라지, 미디엄, 스몰 사이즈로 나뉘어 있는 점입니다. 한창 사이즈가 커지던 때에는 엑스트라 라지를 도입하는 식으로 트렌드를 따랐습니다.
이번 미니 사이즈의 등장은 케이스의 지름이 줄어드는 추세를 반영함과 동시에 다양한 사이즈가 시장에 나와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쥬얼리와 다양한 액세서리를 다루를 까르띠에의 패션성을 반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까르띠에를 예로 비춰봤을 때 요즘의 시계 사이즈는 예전에 비해서 줄어든 추세이면서 다양화 되어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애초에 탱크 루이 까르띠에가 지금 기준으로 큰 사이즈가 아니긴 했지만 사이즈가 크건 작건 간에 특유의 프로포션과 매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가로 16.5mm, 세로 24mm의 탱크 루이 까르띠에 미니 또한 예외는 아니죠. 아주 작은 직사각형 다이얼에는 탱크 고유의 디테일이 미니멀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레일웨이 미닛 인덱스는 로마자 인덱스와 경계선을 긋는 역할로 바뀌었고, 사이즈에 맞게 조정된 부분과 반대로 조정하지 않은 크라운 지름은 묘한 언밸런스를 가져와 미니 사이즈 만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애초에 탱크 루이 까르띠에가 지금 기준으로 큰 사이즈가 아니긴 했지만 사이즈가 크건 작건 간에 특유의 프로포션과 매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탱크 컬렉션에서 길고 단단한 느낌을 주는 탱크는 뉴욕의 높게 솟은 마천루를 케이스 좌우의 디테일에 이식했기 때문입니다.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가 없어도 라지 사이즈 만으로도 충분히 건장한 남성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탱크 아메리칸을 미니 사이즈로 내놓은 점은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 오묘합니다. 손목이 가는 동양 여성은 시도하기 어려웠던 탱크 아메리칸이 미니 사이즈로 작아져, 위시리스트에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Tank Americaine LM W2603156
45.1mm x 26.6mm, 실버
케이스 사이즈의 다양성은 롤렉스 컬렉션에서 잘 드러납니다. 과거 요트마스터에서 미드 사이즈와 스몰 사이즈를 만들어 온 가족(?)이 모두 착용할 수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40mm와 42mm로 나눈 요트마스터, 서브마리너 패밀리를 씨드웰러, 딥 씨로 세분화 해 방수성능에 따라 지름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익스플로러 I은 적절한 지름에 대한 고뇌를 모델 체인지 시기에 보여주었는데요.
최근 컬렉션은 원점인 36mm와 트렌드를 반영한 40mm의 두 가지 사이즈로 전개 중입니다. 전자는 일부 여성 수요를 반영하면서 오리지날에 기반한 다이얼 밸런스가 특징이고, 후자는 크고 시원시원한 다이얼이 매력입니다. 둘 모두 같은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가격도 큰 차이가 없어서, 취향을 세세하게 반영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면서 또 선택에 고민을 주는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Explorer 1 124270
36mm, 블랙, 오이스터
Explorer 40 224270
40mm, 블랙, 오이스터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