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O. Henry)의 1906년작 ‘크리스마스 선물’은 시계의 재화로써 가치를 드러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난한 부부인 짐과 델라는 가장 소중한 물건을 팔아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려고 합니다. 남편인 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자신에게 물려진 회중시계를 팔아 부인 델라를 위해 값비싼 머리 장식을 구입합니다.
소설에서 회중시계를 얼마에 팔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과거에도 시계의 교환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쉬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시계는 안정된 재화, 자산으로써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시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물건은 교환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가 크건 작건 간에 말입니다. 시계는 과거로부터 고가의 물건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중세 시대의 거울과 안경은 비싼 가격 탓에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어 그 가치가 예전 같지는 않죠. 시계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의 고객들인 왕과 귀족처럼 최상위급 경제력을 가진 계층이란 점, 때문에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 상당히 비싸고 교환가치 역시 높았습니다. 정밀 기기인 시계는 특성 덕에 고가를 유지했습니다.
1924년 일본의 시티즌이 회사명을 변경할 때 당시 도쿄 시장이었던 고토 신페이(Goto Shinpei)가 ‘오래도록 널리 시민들에게 사랑받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이름을 시티즌으로 택했는데요. 이것은 당시 고가였던 시계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를 꾀하는 속뜻이 담겨있습니다.
쿼츠시계가 등장하고 시간이 흘러 시계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그 교환가치도 낮아졌지만, 초창기 쿼츠 손목시계는 그렇지 않았었죠. 최초의 손목시계인 세이코 아스트론(Astron)은 골드 케이스로 나오기도 했지만 발매 당시의 가격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려 중형차 한 대의 가격이었으니까요. 기계식 시계는 1980년대에 접어들며 부활을 이루면서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부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럭셔리 였습니다. 널리 보급되어 저렴해진 쿼츠시계와 차별화를 이룰 수 있으면서 스스로의 가치도 높일 수 있었죠. 그러면서 기계식 시계는 교환가치가 다시 올라가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분명 시계를 좋아하고 시계를 매일 착용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정을 하나 해보죠. 해외 여행을 갔다가 현지의 정취에 빠져 느슨하게 긴장을 푼 나머지 지갑과 여권이 든 가방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시계는 무사했습니다. 착용하고 있던 시계가 롤렉스나 오메가라면 그것을 맡기거나 아니면 매각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렵지 않게 현금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현금이 수중에 생기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벌어진 일을 수습할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적절한 예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마카오 같은 대형 카지노가 있는 관광지에는 전당포에 진열된 많은 시계가 있습니다. 아마도 롤렉스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전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가치를 가지는 롤렉스는 빼어난 교환가치를 가진 환금수단이 됩니다. 왜냐하면 강력하고 통일성 있는 가격정책과 높은 수요 덕분에 일정한 교환가치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롤렉스의 환금성 덕분에 카지노에 다시 도전해 시계를 다시 찾아오거나 아니면 적어도 집으로 돌아갈 여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챙길 수 있겠죠.
롤렉스는 일정한 교환가치를 가지지만 그에 반해 현 시점의 파네라이는 환금수단으로써 그리 전망이 좋지 못합니다.
가치가 떨어진 지금, 미래를 보고 투자해 볼 수는 있겠지만 파네라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드라마틱한 변화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빈티지 피스를 복각한 한정판은 2000년대 초,중반 파네라이 붐의 가장 큰 연료역할을 했지만 지나치게 남발한 나머지 그 연료를 빠르게 소진 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열광적인 팬들이 떠났고 모호한 방향성은 신규 유저의 유입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롤렉스와 파네라이는 교환가치가 있지만 가치나 환금성 측면에서는 대비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계에 교환가치, 환금성이 있다는 의미는 자산이 될 수 있는다는 의미로 바꿔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물성에 변화가 없고, 관리를 잘 한다면 사용성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부피가 작아 보관이 용이하고, 자동차나 요트와 같은 물건과 달리 취득, 유지에 따른 세금 부담도 없습니다. 단,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모든 시계가 높은 교환가치나 환금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시계회사의 운영에 따라 변동이 따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변동은 부동산, 주식을 비롯한 비현금성 자산에 따르는 위험부담이기 때문에 위험관리가 필요하겠죠.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롤렉스의 데이토나, 서브마리너, GMT-마스터II, 오메가의 한정판이나 각 시계회사의 희소 제품 등 이라면 위험관리는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유동성이 시계시장에 몰려 들었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시계의 자산화는 그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크리스티(Christie's), 소더비(Sotheby's), 앤티쿼룸(Antiquorum), 필립스(Phillips) 등의 시계 경매를 통해 미술품 거래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산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고가의 가격으로 낙찰된 시계는 희소성, 유명 인사의 소장품이나 관계품이라는 측면에 크게 기대어 왔기 때문에 일반인 입장에서는 시계의 자산화에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열리는 경매에 참석하는 어려움, 적지 않은 거래 수수료 등의 부가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외로는 크로노(Chrono) 24, 국내에서는 바이버와 같은 온라인 거래 플랫폼, 온라인 경매 등이 속속 생겨나면서 시계를 현금화하는 일이 전에 비해 훨씬 수월해지고 투명해 진 현재, 희소한 시계를 손에 넣는 일이 어려운 일반인도 시계를 자산화하고 운용할 수 있습니다. 마치 주식처럼 저평가된 혹은 일시적으로 가치가 하락한 브랜드나 제품을 보유했다가, 가치가 상승하면 수익을 얻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서는 빈티지 워치 매입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죠.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시계 투자의 즐거움은 보유하고 착용하면서 즐길 수 있다면 점입니다. 냉철하게 투자를 위한 물품으로 생각한다면 금고에 넣고 그대로 보관하겠지만 말입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