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누가 대통령에 되는가에 따라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 따라 정치, 경제, 외교 등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없기 때문이죠. 이처럼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영향력 외에도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장신구를 했는지도 세간의 관심을 받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 대통령의 시계가 무엇인지,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시계 애호가들에게도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President’s Watch’로 불리는 시계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브랜드인 벌캔(Vulcain)의 알람시계 크리켓(Cricket)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미국의 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Harry Shippe Truman)은 임기 마지막 날 백악관 뉴스 사진작가 협회로부터 골드 크리켓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케이스 백에는 ‘One More Please’ 문구가 각인이 되어 있었죠. 이것은 트루먼이 사진을 찍을 때 종종 외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크리켓은 대통령이 착용한 사진이 널리 퍼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클래식 프레지던트 시계는 4명의 미국 대통령이 착용했습니다.
36대 미 대통령이자 시계 애호가였던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은 다이얼에 자신의 서명을 넣은 크리켓을 200여개 주문해 국빈과 주요인사들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크리켓이라는 이름은 귀뚜라미 같은 알람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었지만, 실제로는 훨씬 시끄러운 소리를 냈습니다. 스쿨벨이나 소방벨의 볼륨이 낮은 소리라고 해도 될 텐데요. 알람 기능을 이용해 린든 존슨은 크리켓의 알람을 일부러 맞추고 다른 약속이 있다며 종종 회의에서 빠져나가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는 슬림라인으로 부르는 오메가의 직사각형의 얇은 골드 드레스 워치를 즐겨 착용했습니다. 지금처럼 컬렉션 이름이 명확하거나 나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대략적으로 컬렉션명을 추정할 수 있죠.
핸드와인딩 칼리버를 탑재하고 화이트 다이얼에 길고 가는 바 인덱스 만으로 절제된 균형미를 추구한 시계였습니다. 당시 아일랜드 주재 미국대사였던 그랜트 스톡데일(Grant Stockdale)이 미래의 대통령이 될 친구에게 보낸 선물이었습니다. 케이스 백에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친구인 그랜트로부터’ 라는 굵은 각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식에 이 시계를 착용했었습니다. 오메가가 경매에서 35만 달러에 낙찰 받아 현재는 비엘(Biel)의 오메가 박물관에서 실물을 볼 수 있습니다. 2008년에 소량으로 이 시계를 복각하기도 했으나, 300여개가 채 되지 않은 적은 수량이었기 때문에 다시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케네디가 까르띠에의 탱크 루이 까르띠에를 착용한 사진도 남아있습니다. 이 시계는 재클린 케네디가 결혼기념일에 선물한 시계였습니다.
42대 대통령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세번째로 젊은 나이에 미국을 이끄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미 대통령 중 가장 유러피언 취향(?)의 시계를 보유했습니다. 오메가, 롤렉스 같은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시계가 아닌 상당히 시계 애호가 적인 취향이 여러 공개석상에서 드러났죠.
두 점 의 파네라이 루미노르(오토매틱 데이트와 PAM00089로 추정),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컴프레서 다이빙 알람 네이비 실을 착용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전부 지름 44mm대의 활동성 높은 스포츠 워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드레스 워치로는 랑에 운트 죄네의 리하르트 랑에 푸르 드 메리트(Richard Lange Pour Le Mérite)와 오데마 피게의 쥴 오데마(Jules Audemars)의 크로노그래프를 착용한 모습이 있습니다. 블랙 다이얼의 리하르트 랑에 푸르 드 메리트는 상당히 흔하지 않은데요. 타임 온리의 심플한 기능이지만 일정한 토크를 얻기 위한 고전적인 시스템인 퓨제 앤 체인(Fusée and Chain)을 탑재해 높은 정확성을 꾀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졌습니다.
단종된 컬렉션인 쥴 오데마는 클래식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투 카운터와 타키미터의 조합이 돋보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시계인 크리켓을 착용하고 있거나, 젊은 시절에는 타이맥스의 디지털 쿼츠를 찬 사진도 남아 있는데요.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시계보는 안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
45대 대통령이자 다시 대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시계는 39억 달러(세금 관련 자료 등으로 추산)에 달하는 재력에 비하면 검소한(?) 수준입니다.
컬렉션으로는 프레지던트 브레이슬렛으로 부르는 3연 브레이슬렛을 장착한 롤렉스 데이데이트, 파텍 필립의 골든 엘립스(Golden Ellipse), 바쉐론 콘스탄틴의 히스토릭 울트라 파인 1968이 대표적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애호했던 데이데이트는 샴페인 다이얼 클래식한 버전으로 추정되며, 파텍 필립의 골든 엘립스는 캐주얼한 차림에 등장합니다. 가죽 스트랩이 아닌 보기 드문 브레이슬렛 버전입니다. 얇고 작은 지름의 시계이기 때문에 골드 브레이슬렛이 더욱 부각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울트라 파인 1968 역시 작은 지름에 두께 5.5mm의 얇은 시계입니다. 탑재한 셀프와인딩 Cal. 1120은 두께 2.45mm에 불과합니다. 표본이 적지만 트럼프는 풍채에 비해 작고 얇은 시계를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현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오메가 사랑이 돋보입니다.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신형과 구형 씨마스터 다이버 300M. 롤렉스는 스무스 베젤과 블루 다이얼의 데이트 저스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용적인 쓰임새와 합리성을 추구한 컬렉션입니다. 스피드마스터를 제외하면 블루를 사용한 시계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특이점입니다. 오메가와 롤렉스 외에 세이코의 투톤 컬러 케이스의 쿼츠 크로노그래프(Ref. 7T32-6M90)를 착용한 모습도 있습니다.
Speedmaster Calibre 321 311.30.40.30.01.001
39.7mm, 블랙
Seamaster Diver 300M "Casino Royale" 2220.80
41mm, 블루
현 부통령이자 도널드 트럼프와 함께 차기 대권을 노리는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미 대선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까르띠에를 즐겨 착용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발롱 블루 투톤의 작은 사이즈를 착용했고, 과거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까르띠에 로드스터도 보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개된 시계는 두 점 뿐이지만 까르띠에를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