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가 우는 청명한 밤 하늘에 가득 찬 달이 떠오르면 바야흐로 가을의 계절인가 합니다. 검푸른 밤 하늘을 밝히는 달은 그 자체로 분위기 메이커인데요. 작은 다이얼에 떠오른 달도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꿔주는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다이얼의 달은 문 페이즈라고 부르는 기능으로 달의 위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냅니다. 문 페이즈의 디테일을 표현할 때 달에 얼굴을 그려 의인화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것을 보고 문 페이스(Face)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잘못된 표현으로 시계 기능의 달은 문 페이즈(Moon Phase)입니다.
시간, 날짜는 고대의 선조들이 천체현상을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하루하루를 세는 날짜 역시 해가 뜨고 저물면, 달이 뜨고 지는 천체의 움직임을 기록한 자료를 토대로 완성한 산물이죠.
달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 즉 위상을 표시하는 문 페이즈 또한 천체현상을 기반으로 기능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문 페이즈의 기원은 날짜를 확인하거나 항해술에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집니다. 항해 중에 날이 계속해서 흐리거나 악천후가 계속되어, 달의 위치나 위상을 확인할 수 없을 때 문 페이즈를 이용해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달의 위상을 보고 조수간만을 파악해야 한다면 문 페이즈는 매우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문 페이즈 기능의 역사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여러 자료나 의견을 종합해 보면 16세기 유럽의 탁상시계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18세기 브레게의 회중시계에서 문 페이즈 기능을 찾을 수 있고, 손목시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1930년대에서 40년대 무렵에 제작된 시계에서 다이얼에 떠오른 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달의 주기는 29일 12시간 44분 28초 가량이 소요됩니다. 대략적으로 29.5일의 주기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 페이즈는 29.5일 주기를 기반해서 만들게 됩니다.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달을 59개(29.5일 X 2)의 톱니를 가진 톱니바퀴에 올려 표시합니다. 하나의 달이 아니라 두 개의 달로 쌍을 이루는 이유는 29.5개의 톱니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0.5개의 톱니를 구현할 수 없으므로 둘을 합쳐 59개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실제 달의 주기인 29일과 12시간 44분 28초, 계산하기 쉽게 29.5일로 잡은 두 개의 값은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벌어집니다. 우리가 쓰는 1년 365일과 지구 공전주기 사이에서 조금씩 차이가 누적되면 4년에 한번 윤년을 두어 이 오차를 줄이는 것처럼, 문 페이즈도 몇 분의 차이가 누적되면 눈에 띄게 오차가 나기 마련이죠. 그래서 시계회사들은 이 오차를 줄이는 노력을 했고 문 페이즈 기능에 보정 장치를 넣어서 오차를 줄여 나갔습니다. 122년에 하루 오차로 시계를 평생 차더라도 거의 느낄 수 없는 수준의 오차로 줄인 시계회사들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4500만년에 하루라는 인간의 삶으로는 거의 체감할 수 없는 실질적인 ‘0’ 오차까지 도달하며 정확한 문 페이즈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접어들면서 문 페이즈의 실용성은 극히 약화되었습니다. 시간을 일상 어디에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달의 위상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간단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항해술에서도 과거와 같이 천체의 위치나 형태에 의지하지 않게 되었죠. 그렇다고 해서 문 페이즈의 쓰임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다이얼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레이디스 워치처럼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되레 문 페이즈가 등장하는 일은 더욱 늘어나는 중입니다.
그레고리력의 불규칙성은 이를 따르는 퍼페츄얼 캘린더의 불완전성을 야기합니다. IWC는 다이얼 4시와 5시 사이에 노출한 메커니즘으로 불완전성을 극복하며 영원을 추구한 포르투기저 이터널 캘린더를 완성했습니다.
유리 재질을 사용해 투명함을 머금은 다이얼 아래에는 퍼페츄얼 캘린더에 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성을 추구한 문 페이즈 메커니즘이 기요셰로 장식한 더블 문 페이즈를 구동합니다. 이것을 통해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보이는 달의 모양을 동시에 보여주는 한편, 4500만년에 하루라는 정확성으로 문 페이즈 기능에서도 영원함을 추구했습니다.
문워치(Moonwatch)로 부르는 스피드마스터는 아폴로11호의 우주비행사가 손목에 시계를 착용하고 달을 밟은 ‘문 랜딩(Moon landing)’에서 유래합니다. 그렇지만 문 페이즈 기능과는 별 연관성이 없죠. 스피드마스터의 파생 형인 스피드마스터 문 페이즈는 시계 이름처럼 크로노그래프 카운터 사이에 문 페이즈를 올렸습니다. 반짝이는 밤 하늘을 배경으로 달 표면을 리얼하게 묘사한 문 페이즈 디스크가 특징입니다. 디스크가 회전하면 구름 모양의 창을 이용해서 실제 달의 모양을 표시합니다. 이 방식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문 페이즈이기도 합니다.
빈티지는 단종으로부터 최소 30년 이상, 예를 들었던 서브마리너를 기준으로 본다면 Ref. 16610LN 바로 이전에 짧은 기간 생산했던 Ref. 168000이나 그 이전의 Ref. 16800 같은 모델을 빈티지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하르트 랑에 퍼페츄얼 캘린더 테라루나(Terraluna) 같은 시계로 천체기능에서도 일가견을 보여준 랑에 운트 죄네는 문 페이즈에서도 다양함과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랑에 1 문 페이즈는 보통의 문 페이즈처럼 보입니다. 구름 모양 창 안에서 보이는 달과 별의 모습은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입니다.
케이스 지름 36mm의 알티플라노는 화려한 문 페이즈를 시계 전반에 걸쳐 표현합니다. 디자이너의 의도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블루 어벤츄린(Aventurine)과 기요셰 패턴으로 빛을 표현한 마더 오브 펄 다이얼 구성은 밤을 비추는 달빛 같습니다. 그 속에는 초생달 모양의 다이아몬드 세팅으로 장식한 문 페이즈가 담겨 있습니다. 어벤츄린 디스크가 이동하면서 달의 모양을 만드는 방식으로 소재의 고급스러움을 살립니다. 탑재한 셀프와인딩 Cal. 580P는 초승달 모양 로터를 사용해, 시계를 어느 방향에서도 보아도 달을 찾을 수 있도록 디테일을 설정했습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