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 샤넬, 에르메스. 모두가 선망하는 토탈 브랜드죠. 이들이 만드는 가방이나 지갑을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드는 시계라면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릅니다. ‘시계 전문회사’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그러한 인식과 달리 이들의 시계는 요즘 들어 상당히 주목받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시계 전문회사를 능가하기도 합니다. 요즘 진격하는 토탈 브랜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토탈 브랜드는 말 그대로 여러 장르의 아이템을 다룹니다. 여행용 트렁크에서 시작한 루이 비통은 트렁크를 비롯해서 가방과 지갑 같은 가죽제품. 의류와 각종 액세서리를 다루고 있죠.
샤넬은 코코 샤넬의 오뜨 꾸튀르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여성 의류, 가방, 향수와 화장품이 주력입니다. 루이 비통과 에르메스와 달리 시계를 제외하면 여성용으로 한정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로고에서 알 수 있듯 말을 탈 때 쓰는 마구에서 시작해, 그 노하우를 가방 등의 가죽제품으로 이식했습니다. 루이 비통과 마찬가지로 의류나 세세한 액세서리까지 다루는 분야가 넓습니다.
공통적으로 시계를 만들어 왔지만, 2000년 이전의 토탈 브랜드들이 그랬듯 액세서리의 영역에 포함되곤 했습니다. 몸에 착용하는 장신구의 한 종류로 여겼기 때문에 시계 전문회사처럼 메커니컬 칼리버를 탑재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죠. 시계라는 아이템의 형태를 빌어 쿼츠 칼리버를 탑재하고 디자인을 최우선 하는 편이었습니다. 2000년 이후로 양상이 변합니다. 메커니컬 워치의 큰 부가가치를 발견했을 가능성이죠. 코로나 이후로 새롭게 유입된 신흥부호들의 성향도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시계 전문회사와 토탈 브랜드를 구분하지 않았고, 럭셔리 지향이라는 측면에서 공평하게 고려했을 터입니다. 그 사이 토탈 브랜드의 시계 제작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부분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가에 아우렌티(Gae Aulenti)는 루이 비통의 첫 시계라 할 수 있는 몽트레(Monterey) I을 디자인했습니다. 여행용 트렁크에서 시작한 루이 비통의 테마에 맞춘 여행자의 시계(Traveler’s watch)로 월드타임과 알람, 문페이즈 기능을 갖춘 그야 말로 여행자를 위한 기능을 갖춘 쿼츠 시계였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워치메이킹의 시대는 북을 뜻하는 땅부르(Tambour, 2002년)를 발표하고 나서부터 입니다. 시계 전문회사의 디자인 화법과 달리 베젤보다 케이스백의 면적이 더 넓은, 그야말로 북을 디자인으로 옮겨온 모델이었죠.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시작으로 여행자를 위한 GMT, 투르비용 등 다양한 기능을 담아내며 루이 비통 워치메이킹을 전달했습니다.
루이 비통은 2011년 무브먼트 제조사 라 파브리끄 뒤 떵(La Fabrique du Temps)을 인수해 생산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고 라 파브리끄 뒤 떵 루이 비통으로 업그레이드 합니다. 그 결과의 하나로 새로운 땅부르를 선보이게 됩니다. 라 파브리끄 뒤 떵 루이 비통과 무브먼트 스페셜리스트와 협력해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LFT023를 완성하고 새 땅부르에 탑재했습니다. 땅부르 특유의 케이스에서 부드럽게 연결되는 브레이슬릿을 가진 시계로 심플하면서 슬릭한 라인이 돋보입니다. 다이얼, 케이스 디테일은 물론 칼리버 LFT023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하이엔드에 필적하는 빼어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넘버 5. 샤넬을 대표하는 향수죠. 이 향수의 병 모양은 향만큼이나 독특합니다. 1987년 샤넬의 첫 시계 프리미에르(Première)는 넘버 5의 스토퍼 실루엣에서 모티프를 얻은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샤넬은 시계의 영감을 자신의 아이템에서 받곤했지만, 샤넬의 본격적인 워치메이킹을 대변하는 J12는 이와 무관했습니다. 디자인은 샤넬의 디자이너였던 고 자크 엘뤼(Jacques Helleu)가 맡았습니다.
프리미에르로 시작해 1990년의 마드모아젤, 1993년의 마트라세 워치의 디자인을 담당했죠. 마트라세 워치를 완성하고 자크 엘뤼는 새로운 시계의 디자인에 착수합니다. 자동차와 배에 관심이 높았던 그는 가장 유서 깊은 요트대회인 아메리카스컵에 속했던 ‘J 클래스’ 요트대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집니다. 요트 워치를 염두 해 J12 디자인을 구성했고, 샤넬 워치를 상징하는 세라믹 소재로 완성했습니다. 샤넬은 1993년 케이스 제조사 G&F 샤트랑(Chatelain)을 인수하며 시계 제조의 발판으로 삼습니다. 샤트랑을 인수 후 투자와 확장을 거듭해 케이스 제조사에 불과했던 샤트랑은 샤넬의 워치메이킹 기지로 탈바꿈합니다.
현재 샤트랑에서 J12는 물론 하이 컴플리케이션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올해 샤넬은 J12와 사각형 케이스의 보이프렌드를 묶고 코코 샤넬을 상징하는 핑크 컬러로 물들인 핑크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셋 중에서 에르메스는 가장 유서 깊은 워치메이킹의 역사를 가집니다. 1912년 에밀 에르메스(Emile Hermès)가 딸 재클린(Jaqueline)을 위해 선물한 시계가 시작점이 됩니다. 아직 손목시계가 없었던 당시 손목에 차기 위해 회중시계를 넣을 수 있는 가죽 파우치에 스트랩을 단 시계였습니다. 1920년대부터 시계에 관심을 가졌던 에르메스는 파텍 필립이나 예거 르쿨트르 같은 쟁쟁한 전문 시계회사를 동경했다고 알려집니다. 실제로 예거 르쿨트르와 협업을 하기도 했었죠. 에르메스 워치메이킹의 전기는 1978년 당시 CEO였던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가 시계부문은 라 몽트르 에르메스를 설립하면서 부터입니다. 이때 디자이너인 앙리 도리니(Henri d'Origny)가 시계 디자인을 맡고, 아쏘(Arceau)가 탄생합니다.
마구의 하나인 등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아쏘의 디자인은 극히 심플하면서 위, 아래가 비대칭인 러그를 지녀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후 마구를 중심으로 한 아이템에서 모티프를 얻은 시계 디자인이 지속적으로 탄생했으나, 주로 여성용 위주의 전개였습니다. 2006년 에르메스는 하이엔드 무브먼트 제조사 보쉐(Vaucher)의 지분 25%를 확보하면서 보다 본격적인 워치메이킹을 시작합니다. 루이 비통이나 샤넬에 비하면 외부 스페셜리스트와 협력한 개성적인 하이 컴플리케이션을 내놓는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올해 에르메스는 아쏘 뒥 아틀레(Duc Attelé)를 선보였습니다. 로고의 두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를 의미하는 뒥 아틀레를 테마를 시계 곳곳의 디테일로 꾸몄습니다. 센트럴 투르비용과 미닛 리피터 기능의 신작은 에르메스의 H 이니셜 모양의 투르비용 케이지와 말 머리 모양의 리피터 해머, 마차의 바퀴살 모양 휠 등 에르메스의 역사이자 전통인 마구에 대한 헌정을 기능과 디테일로 담아냈습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