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시계 시장의 큰 흐름에서 ‘복각'을 빼놓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로나 이후 시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빈티지 시계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그만큼 증가했습니다. 이에 제조사들도 앞다투어 본인들의 아카이브에서 빈티지 시계를 찾아 복각하고 있는데요, 바이버에서 거래 순위가 높은 브랜드인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와 오데마 피게의 복각 트렌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한 때는 롤렉스는 ‘절대’ 복각을 하지 않는다, 사이즈 다운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통념처럼 떠돌았습니다. 다소 보수적인 입장인 롤렉스와 다르게 자매 브랜드 튜더는 다른 행보를 보여줍니다.
튜더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아카이브에서 복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1971년에 나온 ‘몬테 카를로’의 복각을 시작으로, 2012년에 본격적으로 블랙 베이 컬렉션을 통해 복각 라인업을 확장합니다. 이후 블랙 베이 라인업은 튜더의 주류 라인업이 되어 다양한 소재와 기능으로 지금까지 선보이고 있습니다.
블랙베이는 튜더의 다이버 복각에서 시작되었지만, GMT와 프로같은 바리에이션 모델은 과거 롤렉스의 GMT마스터 펩시와 익스플로러2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블랙베이 프로는 현재는 42mm로 커져 손목이 작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익스플로러2와는 다르게, 최초의 익스플로러2인 1655를 연상시키는 39mm의 사이즈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튜더는 T-Fit과 우수한 무브먼트 등 최신 기술을 가감 없이 적용하여 빈티지 롤렉스에 대한 향수를 현대적인 기술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튜더에게 있어 복각이란, 브랜드의 리뉴얼 런칭 이후부터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브랜드 자체가 일부 라인업을 제외하면 빈티지 롤렉스와 튜더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어 있으니까요.
작년 온리워치에서 보여준 모델 역시 튜더=복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린스 크로노그래프 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해당 시계는, 과거 튜더의 ‘빅 블록 크로노그래프’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이를 위해 튜더는 현행 크로노 모델들에 사용했던 ETA나 셀리타, 브라이틀링 무브먼트가 아닌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인하우스로 새로 만들었을 정도니 과거 모델들의 재해석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각 라인업이 브랜드의 주류 라인업이 된 튜더와는 다르게, 롤렉스는 과거 모델들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과거 모델들의 포인트를 현행 모델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2021년 124270 익스플로러의 36mm로의 회귀, 신형 데이토나 126500의 인덱스가 16520 ‘제니토나’의 인덱스처럼 얇아진 것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롤렉스는 직접적인 복각을 절대 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복각 유행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메가는 타 브랜드에 비해 복각이란 단어에 매우 충실한 시계를 내는 브랜드입니다. 오메가는 3594.50 스피드마스터 ‘레플리카’, 2503.52 ‘레일마스터’ 등 과거의 모델에서 모티브를 따온 다이얼에 현행 케이스를 접목시키는 형태의 복각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현행 모델에서도 씨마스터300 헤리티지, 스피드마스터 마크2 등 명맥이 끊긴 과거의 모델을 가져와 재해석하여 출시하고 있습니다.
이후 2017년 1957년의 씨마스터, 레일마스터, 스피드마스터를 그대로 복각한 트릴로지 모델을 선보이면서 외관상으론 거의 그대로지만 브레이슬릿과 무브먼트, 야광 정도만 현대적인 수준으로 바꾼 복각 시계들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또한 2018년에는 빈티지 씨마스터를 복각한 1948 모델을 현대적인 크기로 변형한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본격적인 복각을 통해 호평을 받은 오메가는 오리지널 스피드마스터에 들어간 무브먼트까지 그대로 선보이고자 2019년 Cal.321을 2년동안 복원하고 세드나 골드로 도금한 새로운 Cal.321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2020년에는 실제로 Cal.321이 적용되었던 105.003 ‘에드 화이트’ 스피드 마스터의 외관을 그대로 복각한 모델을 출시합니다. 2020년에 선보인 ‘에드 화이트’는 무브먼트의 금도금, 세라믹 베젤, 오픈 케이스백, 브레이슬릿의 현대화, 루미노바 야광이 적용된 점을 제외하면 원본 모델의 형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스피드마스터는 1세대 스피드마스터부터 로고의 폰트가 조금씩 다른데, 오메가는 이러한 폰트까지 살려내 스피드마스터 트릴로지와 에드 화이트 복각, 그리고 현행 신형 문워치까지 모두 폰트가 다른 점까지 살려냈습니다. 비슷하게 로고까지 복각하는 태그 호이어에서 HEUER 로고가 박힌 모델들이 생김새와 크기는 물론이고 로고의 폰트까지 오리지널과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메가가 얼마나 복각에 진심인지를 보여줍니다. 이후 오메가는 2022년에 등장한 CK859까지 한정판 또는 특별판으로 복각 모델들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으며, CK859 역시 오리지널 모델과 동일하게 다른 모델과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오메가 로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브먼트까지 복각한 모델이 321이 최초는 아닙니다. 오메가는 1994년에 100주년으로 ‘1894’라는 모델을 원본 모델의 무브먼트까지 복각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현대적인 크기와 로고의 적용이 되었기 때문에 로고까지 복각한 321이나 트릴로지에 비하면 외형상의 어색함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메가의 복각은 씨마스터300 헤리티지나 레일마스터, 스피드마스터 마크2처럼 과거 동명의 시계들에서 모티브를 따온 재해석 모델을 일반판으로, 현대적 소재를 사용하여 1:1 복각을 목표로 로고까지 복각하는 모델들은 한정판 또는 특별판으로 내는 기조 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까르띠에의 복각은 브랜드의 역사와 함께 꾸준히 이어져왔던 탱크 루이 정도를 제외하면 별도의 라인업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앞서 나온 롤렉스와 오메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해당 라인업의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Collection Privée Cartier Paris’와 이를 이어받은 ‘Cartier Privé’, 그리고 이름부터 복각을 위해 나온 라인업인 ‘Réédition’이 그것입니다.
머스트 탱크와 산토스 까레의 등장 이후 까르띠에는 과거처럼 금과 플래티넘만을 사용하는 라인업의 비중보다 은과 스틸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브랜드의 평균 가격대도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등장한 ‘Collection Privée Cartier Paris’, 이하 CPCP는 1998년부터 전개된 라인업으로, 스틸 제품이 메인이 된 현재의 까르띠에와는 다르게 귀금속 시계만을 만들던 최초의 까르띠에를 이어받은 라인입니다. 이 라인의 특징으로는 다이얼의 ‘Paris’와 기요셰 다이얼, 그리고 핸즈 중앙의 장미모양의 장식, 그리고 오직 수동 무브먼트와 금, 플래티넘만 사용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모델이 고유 넘버를 가지고 있으며, 전 모델이 한정판으로 생산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메가처럼 완벽하게 복각을 하기보다는, 급 높이기를 위한 브랜드의 최상위 라인으로 과거의 모델들을 선택했다 정도의 의미일 겁니다.
이후 등장한 Cartier Privé 라인 역시 VIP들을 위한 라인으로 복각을 시작합니다. 전 모델이 금과 플래티넘만을 사용하고 고유 넘버를 가진 한정판이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Paris, 기요셰 다이얼과 가운데의 장미가 CPCP의 상징이라면, Cartier Privé는 그러한 요소 대신 브러쉬드 다이얼과 디자인 자체의 재해석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아래의 사진을 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오리지널, CPCP, Cartier Privé 라인의 탱크 아시메트리크입니다. 이후 등장한 두 모델 역시 앞선 첫번째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오메가처럼 오리지널을 완벽하게 복각한 형태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무브먼트는 꾸준히 최신의 것을 넣어주는 오메가와는 다르게 까르띠에의 한정생산 라인 중 일부는 오리지널과 동일한 무브먼트를 사용한 모델까지 있습니다.
Réédition 라인 역시 금과 플래티넘만을 사용하는 한정판 라인이지만, Cartier Privé 라인보다 원본 모델의 복각에 충실한 형태로 복각이 이루어집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탱크 상트레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각각 1923년에 출시된 오리지널 상트레 플래티넘 모델과 원본 모델의 출시 10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상트레 Réédition입니다. 로고의 폰트 정도를 제외하면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슷합니다.
앞서 말한 브랜드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까르띠에는 브랜드 포지셔닝의 변경이 크게 일어난 브랜드라는 겁니다. 머스트 탱크와 산토스 까레의 등장 이후 브랜드 포지셔닝 자체가 과거에 비해 대중화되었고, 금과 플래티넘만을 사용한 과거의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한 CPCP와 Cartier Privé, Réédition 라인은 가족경영 시절의 까르띠에 브랜드에 대한 복각입니다.
오데마 피게는 복각에 굉장히 소극적인 브랜드입니다. 브랜드의 상징 그 자체인 로얄오크 점보가 1972년에 등장한 5402를 시작으로, 현행 16202 직전까지 사이즈의 변경은 물론 무브먼트의 변경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0년에 [Re]master 01라는 브랜드 최초의 복각 모델을 선보입니다.
1533이라 불리는 이 시계를 복각한 [Re]master 01에 대해 오데마 피게는 ‘Reissue’가 아닌 ‘Remaster’라고 강조합니다. 디자인은 거의 비슷하나 크로노그래프 배열과 무브먼트, 사이즈 모두 원본과는 전혀 다른 시계입니다. 또한 원본 모델은 오데마 피게의 박물관에 첫번째 시계로 선택되었으며, 복각 모델 역시 오데마 피게 박물관의 오픈을 기념하며 나온 모델입니다. 따라서 오데마 피게의 복각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점보를 제외하면 복각 트렌드와는 전혀 동떨어진, 자사의 기념할 날을 위해 만드는 시계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JJ
Writer
바이버로 이직 희망 n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