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 누구나 까르띠에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까르띠에를 가져야 한다는 도발적인 이름의 컬렉션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Les Must de Cartier)는 실제로 까르띠에의 대중화에 성공합니다. 1970년대 전 세계가 경제적인 침체에 빠지고 까르띠에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원해 준 컬렉션이기도 합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가격을 낮춘 탱크 머스트, 이를 이어받은 탱크 솔로는 그 때문에 까르띠에의 입문용으로 아주 적절하죠.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많은 나라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실업률은 늘어나고 중산층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 시계는 1969년의 쿼츠 손목시계가 등장하고 나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까르띠에는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Francois Cartier)의 손자인 루이(Louis), 피에르(Pierre), 자크(Jacques) 까르띠에가 각자 파리, 뉴욕, 런던에 지사를 설립해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각 지역에 맞는 방식과 색채를 살려 운영을 했던 것이죠. 하지만 1942년에 까르띠에의 대들보나 마찬 가지였던 루이 까르띠에가 사망합니다. 의지할 조타수를 잃은 데에 이어 1970년대에 접어들어 전 세계에 걸친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오자 까르띠에도 고난의 파고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최초의 가스라이터 제조업체 실버 매치(Silver Match)를 설립한 로버트 호크(Robert Hocq)는 프리미엄 라이터를 생산(1968년)하기 위해 까르띠에 파리로부터 라이선스를 얻었습니다. 사실 당시만해도 까르띠에는 로버트 호크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 지닌 역사와 잠재 가능성을 깨닫고 인수를 타진하게 됩니다. 1970년대 이전의 까르띠에는 이미 파리, 뮌헨, 제네바, 홍콩을 제외하고 주요 세일즈 포인트를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의 손자들이 맡아서 운영하던 뉴욕과 런던은 까르띠에의 포트폴리오에서 제외되어 있었으니까요. 로버트 호크와 그가 고용한 젊고 유능한 알랭 도미니크 페랑(Alain-Dominique Perrin) 그리고 재정적인 부분을 책임질 기업가 조셉 카누이(Joseph Kanoui)가 손을 잡고 까르띠에 인수계획을 실행합니다. 제일 먼저 까르띠에 파리(1972년)를 인수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까르띠에 런던(1974년)과 뉴욕(1976년)을 차례대로 통합해 까르띠에 인터내셔널을 설립해 ‘왕의 보석상’이 재기할 기반을 마련합니다.
그 사이 알랭 도미니크 페랑은 중산층과 젊은 세대로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 컬렉션(1973년)을 선보입니다. 가스라이터와 펜이 포함된 이 컬렉션은 4년뒤 탱크 워치로 이어지고 향수와 가죽제품 같은 새로운 분야의 아이템으로도 확장됩니다. 버건디 컬러를 내세운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 컬렉션은 전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며 새로운 세대를 고객층으로 흡수하게 됩니다. 시계로 범위를 좁힌 머스트 드 까르띠에 컬렉션은 탱크 머스트입니다. 새로운 탱크 패밀리의 일원인 탱크 머스트의 특징은 가격 부담을 줄여 젊은 세대를 공략하려는 데 있었고, 그 때문에 기존 탱크 워치와 적지 않은 차이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탱크 머스트(1977년)는 누구나 까르띠에를 가질 수 있도록 가격을 낮추는데 주력했습니다. 보석상으로 시작한 회사인지라 시계도 금이나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으로만 다뤄왔기 때문에 갑자기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소재를 쓰기에는 무리가 따랐죠.
그래서 은으로 만든 케이스에 금도금을 한 버메일(Vermeil) 케이스를 택합니다.
무브먼트는 메커니컬 방식도 사용했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관리하기 쉬운 쿼츠 무브먼트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탱크 워치의 위상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고객층을 수용하기 위한 합리적인 시도였습니다. 탱크 머스트의 케이스 디자인은 탱크 루이 까르띠에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케이스 좌우에 달린 샤프트는 끝부분이 둥글고 단면이 곡선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느낌이며, 측면에서 보면 제법 볼륨감도 느껴집니다.
1970년대 탱크 머스트의 또 다른 특징은 다이얼 외곽을 따라 그리는 레일웨이 미니트 트랙과 로마 숫자 인덱스를 과감하게 삭제했습니다. 다이얼은 레 머스트 드 까르띠에 컬렉션의 상징인 버건디를 비롯해서 네이비, 그린, 블랙 같은 컬러로 채워 넣어 모던함을 가미했습니다.
2021년 리바이벌 한 탱크 머스트는 앞에서 언급한 1970년대의 모습을 복원하는 한편, 버메일 케이스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력 소재로 택했습니다. 아울러 단종을 앞둔 탱크 솔로의 요소를 일부 이어받았습니다.
원래 탱크 머스트에는 브레이슬렛 버전이 없지만, 탱크 솔로에서 가져와 브레이슬렛 버전을 소개했습니다. 곡선적인 탱크 머스트에 어울리는 브레이슬렛을 디자인했습니다. 잉곳(Ingot) 모양 링크와 H자 모양 링크가 교차하는 구조이며, 케이스의 샤프트처럼 링크도 둥글둥글하게 생겼습니다.
인덱스를 삭제한 컬러 다이얼과 레일웨이 미니트 트랙과 로마 숫자 인덱스가 들어간 다이얼이 공존합니다. 쿼츠 무브먼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가격을 낮추고자 한 부분도 예전과 같습니다.
Tank Must SM WSTA0042
29.5mm x 22mm, 실버
Tank Must LM WSTA0041
33.7mm x 25.5mm, 실버
Tank Must SM WSTA0051
29.5mm x 22mm, 실버
Tank Must XL WSTA0053
41mm x 31mm, 실버/로만/기요세
2004년 등장한 탱크 솔로는 가격면에서 1970년대 탱크 머스트의 포지션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6년에 등장한 탱크 프랑세즈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기본으로 채택하면서 까르띠에 워치에서도 스테인리스 스틸의 사용이 어렵지 않게 됩니다.
탱크 워치의 보급을 노린 탱크 솔로이므로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가 주력이 됩니다. 탱크 솔로의 외관은 실루엣만 보면 탱크 루이 까르띠에나 탱크 머스트와 흡사하지만, 플랫하게 만들었습니다. 샤프트와 케이스백을 수평으로 얇게 저며낸 듯한 케이스 디자인이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점입니다.
브레이슬렛 버전에서 이 부분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잉곳과 H자 모양 링크가 교차하는 구조는 탱크 머스트로 이어졌지만, 링크의 모양은 직선적이며 표면을 새틴 처리해서 직선이 부각됩니다.
링크의 모서리는 직선의 느낌을 내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별도의 처리를 하지 않아서 날이 선 듯합니다. 제작비용 절감을 하기 위한 방법이겠다는 생각입니다.
탱크 솔로의 다이얼은 탱크 워치의 기본인 레일웨이 미니트 트랙과 로마 숫자 인덱스가 기본이지만 모델에 따라 팝 적인 요소가 가미되기도 했습니다. 시인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점진적으로 커지는 로마 숫자 인덱스나 팬더 무늬, 뱀의 표피 패턴을 한 버전 등 탱크 솔로만의 디테일이 있었습니다.
Tank Solo SM W1018255
30mm x 23mm, 실버
Tank Solo SM W5200013
31mm x 24mm, 실버
Tank Solo LM W5200025
34.8mm x 27.4mm, 실버
탱크 머스트와 탱크 솔로는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해서 가격을 낮추고자 하는 부분은 공통적인 지향점입니다. 전자는 곡선 위주, 후자는 직선이 도드라진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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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