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급시계를 대표하는 나라는 단연 스위스지만 독일시계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에서 시계기술이 스위스로 넘어가기 전에는 과학기술이 발달했던 영국, 프랑스가 대표적인 시계 생산국이었고 독일도 제법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이제 독일시계하면 글라슈테(Glashütte) 지역이 가장 잘 알려져 있죠.
독일 동부의 작센(Saxen)주에 속한 글라슈테는 과거 은을 채굴하는 광산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광산이 고갈되면서 어려워진 지역부흥을 위해 시계산업을 시작했고, 독일을 대표하는 시계의 땅으로 완전히 변모 했습니다.
랑에 운트 죄네는 은광이 고갈된 글라슈테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한 남자의 노력으로 시작됩니다. 작센 공국의 왕립 시계사였던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Ferdinand Adolph Lange)는 글라슈테를 살리기 위해 시계공방을 지어 마을의 청년들을 고용하고 워치메이킹 교육을 겸해 운영을 시작합니다(1845년).
초반에는 생산성이 좋지 못하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점차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섭니다. 그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유럽에서 최초로 미터법을 시계제조에 적용했습니다. 덕분에 시계부품의 치수나 계산이 간단해지면서 측정 오차나 오류가 줄어들었죠. 자연스럽게 정밀성과 작업능률이 크게 향상되었고 아.랑에 운트 죄네가 만드는 시계의 품질이 올라갔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회사로 자리를 잡은 랑에 운트 죄네였지만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두번의 세계대전을 벌인 대가로 패전 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고,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던 동독은 국가의 통제로 모든 시계회사가 통폐합을 강요당합니다. 랑에 운트 죄네와 같은 하이엔드 회사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더더욱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영시계회사로 통합되어 빛을 잃어버립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랑에 운트 죄네의 공장은 전쟁 중 폭격을 맞아 일부가 소실된 상황이었습니다. 랑에 가문의 후손인 발터 랑에(Walter Lange)는 서독으로 떠났지만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글라슈테로 돌아옵니다.
당시 서독 VDO그룹의 럭셔리 디비전인 LMH(Les Manufactures Horlogeres)에서 IWC와 예거 르쿨트르를 운영하던 CEO 균터 블럼라인(Günter Blümlein)과 만나 재건 계획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대립하던 두 진영의 냉전이 격화되고 그 영향으로 동, 서독을 넘나드는 일이 어려워지자 발터 랑에는 감시의 눈을 피해 목숨을 건 왕래를 시작합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60세를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1989년 11월, 역사가 급작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큰 변화의 파동은 독일을 동과 서로 나눴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발터 랑에와 균터 블럼라인은 목숨을 걸고 진행해 온 계획의 결실을 맺습니다. 재건 계획을 시작하던 때를 발터 랑에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들어 팔 수 있는 시계도 없었고, 종업원도 없었고, 사옥도 기계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있었던 건 독일 작센에서 세계최고의 시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라고. 1994년 스위스 시계와 완전히 차별화된 세계최고 수준의 시계를 발표했습니다.
발표회장에서 공개한 시계는 총 4개로 지금은 대표작으로 자리잡은 랑에 1(Lange1)을 비롯해서 작소니아(Saxonia), 아케이드(Arkade), 투르비용 푸르 르 메리트(Tourbillon Pour le Mérite)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스위스시계와 차별화 된 독일시계만의 독창성과 디테일, 그리고 부활이라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덕분에 빠르게 하이엔드 회사로 자리잡습니다. 잠에서 깬 독일의 거인은 새로 내놓는 시계마다 호평과 주목을 받습니다. 몇 년 뒤 안타깝게도 균터 블럼라인이 백혈병으로 영면에 들고, 랑에 운트 죄네 또한 리치몬드 그룹에 IWC, 예거 르쿨트르와 함께 매각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은 퇴색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남은 발터 랑에와 랑에 가문이 든든하게 브랜드를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랑에 운트 죄네는 광고를 포함해 공식적인 시계 사진에 나오는 시계는 전부 1시 52분을 가리킵니다. 스위스 시계가 10시 8분 정도를 가리키는 것과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죠. 이 점만 봐도 랑에 운트 죄네가 독일시계의 최고봉으로서 얼마나 스위스시계와 차별을 꾀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랑에 운트 죄네는 새로운 시도와 고유한 양식을 가지고 완벽한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랑에 운트 부활의 일등공신이라면 단연 랑에 1을 꼽을 것입니다. 스위스시계와 차별하기 위한 노력과 세계최고 수준의 시계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습니다.
글라슈테가 위치한 작센 주의 주도 드레스덴은 독일 동쪽의 문화, 과학, 기술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역사적 유산이 남아있고 젬퍼(Semper) 오페라 하우스도 그 하나입니다. 오페라 하우스에는 배우들이 시간을 확인하기 쉽도록 고안된 디지털 표시의 5미닛 클락이 있습니다. 이것에서 힌트를 얻어 빅데이트 메커니즘을 개발해 랑에 1에 적용했습니다. 큰 두개의 창으로 십자리와 일자리의 숫자를 디지털 방식의 날짜를 표시하고, 많은 스위스 회사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시, 분침의 영역을 액자 속 액자처럼 구성한
다이얼도 랑에 1의 차별화된 디테일입니다. 컬렉션의 중심 모델로 자리잡은 랑에 1은 특유의 레이아웃을 바탕으로 문페이즈, 월드타임 등 다양한 기능을 소개합니다.
Lange 1 191.032
38.5mm, 실버
Lange 1 191.039
38.5mm, 실버
작센은 랑에 운트 죄네가 시작한 땅이기도 하면서 예로부터 독일 기술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해 온 곳입니다. 여기서 유래해 컬렉션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아주 얇은 씬(Thin) 워치는 간결한 기능 때문에 기술력의 집약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얇게 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하우와 정교한 기술이 요구됩니다. 작소니아에는 이런 씬 워치에서 매우 복잡한 더블 스플릿(독립 카운팅 기능을 강화한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트리플 스플릿(독립 카운팅 기능을 더욱 강화한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캘린더 같은 컴플리케이션에 31일에 달하는 울트라 롱 파워리저브까지 독일시계의 기술력을 전달합니다.
Saxonia Thin 201.027
37mm, 실버
Saxonia Thin 201.033
37mm, 실버
설립자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가 탄생한 1815년에서 가져온 1815 컬렉션은 독창적이며 개성적인 랑에 1 컬렉션과 달리 최선의 가독성을 고려했습니다.
다이얼의 레일웨이 미닛 인덱스와 선명하게 핸드라이팅 한 것 같은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가 1815 컬렉션이 지닌 캐릭터입니다. 시, 분, 초침만 가진 간결한 타임온리로 저먼 워치메이킹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모델부터 알파벳 C자 모양의 독일식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와 간결한 구성의 애뉴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투르비용까지 다양한 기능을 담백한 디자인으로 보여줍니다.
1815 Up/Down 234.032
39mm, 실버
1815 235.026
38.5mm, 실버
A. Lange & Söhne 의 한글 표기는 원칙적으로 '아. 랑에 운트 죄네' 지만, 브랜드의 한국 공식 표기에 따라 '랑에 운트 죄네'로 작성하였습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