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언즈입니다. 이번 회차에선 제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시계를 좋아하는 지인들께 소장 컬렉션중에서 바이버 매거진 독자들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네 분이 답해주셨습니다.
어렸을 적 동네 문방구나 팬시점 가게 주인장 뒤쪽에 진열되어 있던 레고 기사의 성, 세일러문 요술봉 , 타미야 미니카, 볼트론 같은 변신로봇들을 보며 애 닳아 본 경험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 나 또한 레고 우주왕복선 기지 (6339)를 사달라고 방방 뛰며 어머니에게 철 없이 조르던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런 간절함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희미해졌다. 바쁘게 살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회사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고 동창회에서는 잘 나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루 끝에 TV앞에 앉아 맥주 한 캔 꺼내 마시는 게 낙이 된 내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멋진 어른이 되기를 동경하며 살아왔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레고를 조립하며 행복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일었다.
당시에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결핍과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융합되어 보복소비 욕구가 생겼다 . 그래도 나름 어른이 되었다고 레고나 미니카 같은 장난감을 그대로 구입하기보다는 좀 더 사치스러운 어른들의 장난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계에 마음이 간 가장 큰 이유는 내 모든 생활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시계를 구경하며 알아가기 시작했고, 오메가의 문워치 실버스누피 50주년기념 스피드마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스피드마스터는 NASA의 우주 탐사에 참여하여 많은 활약을 했는데 , 특히 1970년 달 탐사를 위해 지구를 떠난 아폴로13호의 산소탱크가 갑자기 폭발하여 전자장비들이 모두 작동 불가인 상황에서 지구로 귀환할 궤도 수정을 해야 했다.
이 때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로 14초를 정확하게 계측해 엔진을 점화해 모두 지구로 무사 귀환할 수 있었고 , 이를 기리고자 오메가가 받은 실버스누피 어워즈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어렸을 적 장난감가게 앞에 내 발을 묶어 놓곤 하던 레고 우주왕복선 기지만큼이나 설레는 것이었다. 무작정 이건 사고야 말겠다는 일념에 휩싸였다. 그러나 가치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선 그에 걸 맞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오메가는 구입 기회를 쉽게 주지 않았다 . 높은 실적이 있어야만 구매할 수 있었는데 ,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그런 실적을 쌓기가 쉽지 않아 다른 곳에서 ‘프리미엄’을 지불해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이 시계전문 거래 플랫폼 바이버였다 . 오메가 매장에서는 구경조차 못한 스누피 에디션을 바이버에서는 볼 수 있다고 했다 . 바이버에 스누피 재고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압구정로데오로 향했다. 아무래도 개인거래를 하느라 시간적·감정적 소모를 하는 것보다는 믿음직한 곳에서 구매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도착한 바이버는 마치 어른이들을 위한 팬시점 같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멋진 시계를 다 가져다 둔 것 같았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롤렉스 데이토나 흰판이 어릴 적 슈퍼그랑죠를 볼 때처럼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댔다. 하지만 가격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고 , 무엇보다 나를 바이버로 이끈 스누피 에디션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뒤 나는 하얀 바이버 종이백을 들고 압구정로데오 거리로 다시 나왔다. 발걸음은 날아가는 것 같았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내 마음을 반영하듯 손목 위에선 스누피가 스페이스수트를 입고 퍼런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레고 우주왕복선을 사주셨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었다.
순수한 소년의 마음으로 지금보다 더 기뻐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때 이 감정 감정을 느껴보지 보지못한 것이 뭐 중요하겠냐. 어쨌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바이버가 그때의 문구점이 되고 나는 우주왕복선 기지 레고를 들고 문구점을 당당히 나서는 그때의 소년으로 돌아가 있지 아니한가.
Daytona 116500LN
40mm, 화이트, 오이스터
Moonwatch 310.32.42.50.02.001
42mm, 실버
Ref. 3330은 브레게의 회중시계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시계다. 그렇기에 다이얼 안 요소들의 배치가 현대적인 시계의 레이아웃을 벗어났다. 첫인상은 굉장히 낯설었고, 그랬기에 멋있었다. 마치 처음 쳄발로를 봤을 때의 기분이랄까.
내가 알던 피아노의 흰 건반이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내가 흰색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라 특별해 보였던,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그 특별함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근원에 가까운 그런 느낌. 생소한 다이얼 레이아웃이 이 시계를 굉장히 특별한 시계로 보이게 했다. 그리고 특별함이 무뎌질 때쯤 디자인적으로 완벽한 대칭과 시계로써의 완성도가 큰 안정감을 준다. 이내 이 시계를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여백이 많은 다이얼 레이아웃이지만 완전한 좌우대칭이 여백으로 무너질 수 있는 균형을 잡았다. 시간을 보는 영역과 캘린더를 보는 영역을 다른 패턴의 기요셰로 채워 세련된 방식으로 가독성을 높였다. 프레데릭 피게(Frédéric Piguet) Calibre 71을 기초해 만든 얇은 무브먼트는 브레게의 상징적인 케이스를 더 실용적이고 아름답게 만든다.
내게 3330은 완벽하면서 대체될 수 없는 시계이다. 완벽하면서도 다른 완벽함과 비교되지 않는,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굉장히 닮아있다.
우리는 주로 누군가를 본보기로 삼아 성장한다. 내가 동경하는 모습, 나는 그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의 비대칭을 참지 못한다. 복잡한 방정식 풀듯 본능적으로 대칭을 쫓는다. 3330은 내게 그런 본보기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내게 남은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함께 상기시키고 싶다.
문명이 인간의 욕망으로 발전해왔듯이 나는 나의 발전을 위해 내 소유욕을 마주 바라본다.
Classique 5930 5930BB/12/986
35.5mm, 실버/기요셰
내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시계는 브레게 마린 5817이다. 나는 이 시계를 소재와 색상별로 4개나 소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애정하는 이유는 이 시계의 전방위적인 활용성에 있다.
클래식함의 대명사 브레게에서 그 대표적 특징인 기요쉐 다이얼, 코인 엣지 케이스, 핸드 인그레이빙 된 로터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스포티한 쉐이프와 성능(방수 100m, 스크류다운 크라운)을 가지고 있다. 스포티함과 클래식함을 동시에 갖춘 시계라 어느 착장에도 어색함이 없는 것이다. 러버 소재 스트랩에 착용하면 스포티함을, 가죽 소재 스트랩에 착용하면 클래식함을 강조할 수 있다.
시계의 직경도 39mm로 적당하다. 러그가 다소 길어 러그부터 러그까지의 길이가 50mm에 달해 손목이 가는 사람을 위한 시계는 아니지만, 이 조건만 충족한다면 시계의 러버스트랩이 손목에 감기게끔 꺾여있는 구조라 착용감이 편하다.
브레게의 센스도 엿볼 수 있는데, (빅데이트) 날짜창을 6시에 커다랗게 배치함으로써 다이얼의 좌우 대칭이 안정적인 구도가 된다. 같은 시계를 4개나 산다는 것이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만큼 브레게 5817은 한 사람이 4번이나 선택하게 하는 힘이 있는 시계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Marine Big Date 5817ST/12/5V8
39mm, 실버/기요셰 골드
Marine Big Date 5817ST/Y2/5V8
39mm, 블루
처음에는 서브마리너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컸습니다. 시계 커뮤니티를 몇분만 돌아봐도 지나치다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서브마리너를 오마주한 시계들도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친구의 권유로 방문하게 된 바이버 쇼룸에서 처음으로 서브마리너를 접해보고 구형인 Ref. 114060, 구구형 Ref. 14060 등 다른 연식의 서브마리너 모델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신형의 퀄리티와 구형의 얇은 러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가지고 있는 서브마리너 논데이트 Ref. 124060 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바이버에서 좋은 조건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서브마리너의 디자인은 출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현대식 라인끼리도 옆에 두고 보지 않는 이상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변화만 겪어왔고, 구형 모델들간의 변화도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이 모습 때문에 롤렉스는, 특히 서브마리너는 지금 현행 모델을 구매하여도 신형에 크게 뒤쳐지지 않고 현행 모델만의 강점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고, 큰 돈을 들여 구매하기에 다른 시계에 비해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알루미늄 베젤도 세라믹 베젤로 개선되어 일상생활의 흠집 걱정 없이 착용 가능합니다. 세라믹 베젤의 화려함도 큰 몫을 하는 것 같고요. 가장 큰 만족 포인트로는 글라이드락입니다. 덕분에 낮과 밤 손목 사이즈가 살짝 변할 때 아무런 조절 없이 원하는 사이즈로 조절할 수 있거든요. 튜더의 T-Fit, 오메가의 미세조정 모두 사용해봤지만 아직까지도 롤렉스의 글라이드락이 가장 조작감이 확실하고 든든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일상생활에 있어서 코디를 별로 타지 않는 점 또한 서브마리너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다른 다이버 워치들은 스포티한 면이 있어서 정장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서브마리너는 정장에 착용하는 케이스가 많아서인지 별다른 거부감이 없고, 세라믹 베젤 덕분에 어느정도 드레시한 면까지 있어서 올라운드 워치로 손색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 덕분에 다른 시계는 모두 정리하고 현재는 서브마리너만 착용하고 있는데, 이번만큼은 마음 변하지 않고 오래 착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바이버 쇼룸에서 평생을 함께 할 시계를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Submariner 124060
41mm, 블랙, 오이스터
Submariner Date 126610LN
41mm, 블랙, 오이스터
네 분의 답변을 들어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계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모두가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겠죠. 하지만 자신만의 답이 명확해지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시계는 분명 당신에게 최고의 시계일 겁니다.
SILLIONS
Writer
유튜브에서 시계채널을 운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