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워치는 어떤 시계일까요? 그 정의에서조차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두 가지는 확실합니다. 포켓워치를 이어받은 시계라는 사실입니다. 또 정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생김새를 한 시계입니다. 스포츠 워치는 드레스 워치에서 뻗어 나온 갈래의 하나지만 이제 스포츠 워치가 주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요즘 그래서 드레스 워치는 위기의 시기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멋진 시계가 많습니다. 시계의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산물이니까요.
스포츠 워치의 시대라는 사실을 인정하듯 시계회사들은 새 드레스 워치를 내놓는데 인색합니다. 하지만 시계계의 제왕이라면 그럴 수 없죠. 파텍 필립은 제왕의 품격을 입증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드레스 워치인 칼라트라바 Ref. 6119(2021년)를 내놓았습니다.
과거 내놓았던 칼라트라바 Ref. 3919(1985년)의 클루 드 파리(Clous de paris) 기요세로 장식한 베젤을 물려받았습니다. 다이얼과 인덱스는 첫 칼라트라바 Ref. 96(1932년)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을 택했습니다. 전통을 잇는 칼라트라바 Ref. 6119지만 케이스의 직경은 39mm로 늘렸습니다. 드레스 워치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한 것처럼 제법 커진 크기에 두께도 8mm대로 볼륨감이 있습니다.
멋진 외관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칼라트라바 Ref. 6119지만 핵심은 새로 개발한 수동 무브먼트입니다. 새 드레스 워치만큼이나 수요가 많지 않은 수동 무브먼트의 개발에도 소극적인 요즘이라서 더욱 제왕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칼라트라바 Ref. 6119의 엔진은 Cal. 30-255 PS입니다. Cal. 넘버를 해독해 보면 약 30mm 직경에 두께 2.55mm, 스몰 세컨드의 스펙입니다. 30mm 직경의 여유로운 면적은 두 개의 태엽 통을 넣어 약 65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실현합니다. 이는 드레스 워치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전통과 변화의 절묘한 하모니가 칼라트라바 Ref. 6119입니다.
Calatrava 5196R
실버
Calatrava 5116R
36mm, 화이트
오데마 피게하면 자동 반사나 마찬가지로 로열 오크가 떠오릅니다. 아이코닉 피스 하나가 없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다른 시계회사 입장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지만, 한 가지 시계나 컬렉션에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다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를 보좌할 수 있는 컬렉션을 여러 차례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쥴 오데마(Jules audemars)나 타원형 케이스의 밀레네리(Millenary) 같은 드레스 워치 컬렉션은 단종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 오데마 피게가 내놓은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회심의 일격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지금까지 드레스 워치 화법에 맞추려고 했던 것과 달리 미래의 드레스 워치를 정의하려는 생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41mm 직경으로 크고 두께도 10mm가 넘습니다. 스포츠 워치 못지 않은 볼륨으로 스포츠 워치의 착용감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정면에서 볼 때는 평범해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는 색다른 디테일이 많이 숨어있습니다. 스켈레톤 러그, 팔각형 미들 케이스, 3차원의 굴곡을 그리는 글라스, 공들인 래커 다이얼과 인덱스는 드레스 워치는 심심하다는 편견을 잊게 해 줍니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의 등장과 함께 세대교체 한 엔진(무브먼트) 라인업은 로열 오크와 공유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볼드함과 강렬함으로 드레스 워치의 새로운 미래를 정의할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입니다.
Code 11.59 15210ST
블루/기요셰 선레이
아.랑에 운트 죄네는 1994년 모던 에라(Era)를 개막했습니다. 독일이 동과 서로 나뉘어 있었던 시기에 동독에 속했던 아.랑에 운트 죄네는 실질적으로 문을 닫았던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며 새로 문을 연 아.랑에 운트 죄네는 회사를 대표할 시계를 공개했습니다. 그 하나가 랑에 1이었으며 전에 없던 스타일의 시계였습니다. 다이얼 안에 작은 다이얼을 넣고 주변에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등의 기능을 늘어놓는 액자식 구성을 택했습니다. 두 개의 큼지막한 윈도우로 날짜를 표시하는 빅 데이트도 랑에 1을 필두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요즘은 다른 시계 회사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만 1994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이었습니다. 드레스덴에 있는 젬퍼(Semper) 오페라 하우스 무대 위에 달린 오페라 클락에서 영감을 얻어 독일식 요소를 표방했습니다.
이렇듯 아.랑에 운트 죄네는 모던 에라를 열면서 기능이나 디테일로 스위스의 시계와는 분명하게 차별화를 꾀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랑에 1은 곧바로 아.랑에 운트 죄네를 대표하는 시계로 자리잡았습니다. 이후 랑에 1을 주축으로 문페이즈, 월드타임, 퍼페츄얼 캘린더와 투르비용까지 소개되어 랑에 1의 독창성을 한층 다채롭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Lange 1 191.032
38.5mm, 실버
Lange 1 191.039
38.5mm, 실버
요즘 드레스 워치가 큰 주목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능 요소가 디자인과 디테일에 녹아든 스포츠 워치에 비해 특징이 없어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작고 두께가 얇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약하다는 이유로 있겠죠. 한마디로 드레스 워치는 밋밋하다는 건데요. 그런 드레스 워치에서 나름 꾸준하게 인기를 끌며 선전하는 시계가 있습니다.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컨트롤 캘린더 같은 시계입니다.
날짜, 요일, 월을 모두 표시하는 풀캘린더, 오늘 밤에 떠오른 달이 어떤 모양인지 보여주는 예쁜 문페이즈가 결합하면 어디에서도 밋밋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이얼을 꽉 채우는 기능이 오히려 복잡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마스터 컨트롤 캘린더는 제법 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1940년대에는 티어드롭(Tear drop) 스타일의 러그를 같은 기능의 시계를 찾을 수 있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운석(Meteorite) 다이얼 버전을 내놓았습니다. 8데이즈 무브먼트가 유행할 때는 8일 파워리저브 버전으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소재나 엔진에 변화가 있었지만 풀캘린더와 문페이즈의 결합에는 변화가 없었죠. 가장 최신 버전의 마스터 컨트롤 캘린더도 두 기능의 결합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스터 컨트롤 캘린더가 마냥 전통적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날짜를 가리키는 포인터 데이터가 제자리 점프하는 애니메이션을 넣었습니다. 날짜 15일과 16일 사이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입니다. 포인터 데이터가 날짜 표시를 위해 머물며 문페이즈와 초침을 가리지 않도록 점핑하는 변화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Master Control Calendar Q4148420
40mm, 실버
단 하나의 드레스 워치를 가져야 한다면 까르띠에의 탱크 루이 까르띠에는 좋은 선택입니다. 쥬얼리 회사가 시계를 만들면 이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우아하면서 세련된 디테일을 보여줍니다. 쥬얼리를 만들며 축적한 세공 기술과 노하우를 발휘하듯 말이죠.
탱크 루이 까르띠에의 자그마한 외관과 달리 이름의 탱크는 육중하고 금속성의 차가운 이미지입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볼 법한데요. 루이 까르띠에가 탱크라는 새로운 무기의 등장 소식을 듣고 만든 시계이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고통받던 프랑스 국민의 한 명이었던 그는 탱크가 전쟁을 끝내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탱크의 모습을 시계에 투명했고 직사각형 케이스 좌우로 붙은 긴 러그는 위에서 내려다본 탱크의 모습과 다름없었습니다. 주얼리 회사를 통해 탄생한 탱크는 그 이름이나 이미지와 달리 우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탄생으로부터 100년이 넘은 탱크는 많은 후손을 만들어냈지만, 기원인 탱크 노말이나 탱크 루이 까르띠에는 원형을 유지하며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소유하거나 후대에 물려줄 계획이 있다면 타임 리스한 탱크 루이 까르띠에는 좋은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Tank Louis Cartier SM WGTA0010
29.5mm x 22mm, 실버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