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분야는 물론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뜻을 정의하고자 한다면 머리속에서 도통 갈피를 못 잡고 뿌옇게 되곤 합니다. 클래식이란 말이 통용되는 분야를 막론하고 고전이라고 바꿔 말하면 뜻은 통하겠지만 2%가량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족한 조각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는 가치를 지니는 무엇’이라고 한다면 딱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브레게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기도 할 겁니다.
견습 워치메이커를 마친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 louis breguet)는 1775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있는 시테 섬(Île de la Cité)에 공방을 엽니다. 당시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의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고급기술이 집약된 기계이자 유희적 도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계의 수요는 귀족이나 왕족처럼 부유한 경제력을 지닌 계층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브레게의 고객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포켓워치 넘버 160을 주문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주문자와 수주자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완성된 비운의 걸작 넘버 160은 최고의 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의해서 였습니다.
이 포켓워치는 크로노그래프, 퍼페츄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천체의 움직임을 표시하는 셀레스티얼 기능에 온도계까지 갖춘 컴플리케이션 중의 컴플리케이션입니다. 넘버 160을 현대의 기술로 재현한 넘버 1160조차도 완벽하게 복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고도의 기술 집약체 였습니다. 브레게의 1810년 아카이브에 따르면 나폴리 여왕도 고객의 한 명이었습니다. 얇은 타원형 케이스에 리피터 기능을 갖춘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주문한 내역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계는 브레게의 대표적인 여성용 시계 레인 드 네이플의 기원이자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시계로(브레게의 주장에 따르면 최초의 손목시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 그리고 외국인까지 브레게의 고객이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브레게가 만든 시계가 가장 빼어났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 미학적으로 선구적인 역할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브레게는 현재의 시계기술에도 통용되는 다양한 메커니즘과 디테일을 고안했습니다. 그 때문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를 두고 시계기술을 200년 앞당긴 남자라고 일컫습니다.
투르비용(Tourbillon, 1801년)은 브레게의 발명품 중 가장 유명합니다. 컴플리케이션의 하나로 꼽는 밸런스 메커니즘으로 회전하는 움직임에서 착안한 프랑스어 투르비용(회오리바람)에서 이름 붙었습니다. 투르비용은 케이지라는 부품에 밸런스를 넣고 천천히 돌립니다. 밸런스에는 규칙적인 수축과 팽창으로 일정한 진동하도록 만드는 헤어스프링이 달렸습니다. 이것이 문제없이 작동해야 시계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있습니다. 당시 무거운 철제 헤어스프링은 중력 영향으로 모양이 일그러지며 정확성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투르비용은 밸런스를 천천히 돌려 헤어스프링이 본래의 모양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정확한 시간을 표시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시계의 심장인 밸런스 휠의 축(시계 부품에서 가장 가는 축이라서 충격에 취약합니다)이 충격을 받아 휘거나 부러지는 일을 방지하는 내충격장치 파라슈트(Pare-chute, 1790년), 요즘 자동 무브먼트의 기원이 되는 퍼페추얼(Perpétuelle, 1792년)도 브레게의 발명품입니다.
시대를 앞서 나간 메커니즘 외에도 브레게 핸즈라고 부르는 초승달 모양의 팁이 들어간 바늘, 브레게 누머럴(Numeral)이라고 하는 필기체의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 기요세(Guilloché) 다이얼 같은 디테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본래 기요세 다이얼은 골드로 만든 다이얼이 빛 반사로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고자 표면에 규칙적인 패턴을 새기고 은으로 덮은 기능적인 접근이었습니다. 지금은 브레게 핸즈나 브레게 누머럴과 더불어 대표적인 디테일의 하나이며 이들을 묶어 브레게 스타일이라고 칭하며, 다른 브랜드와 명확한 차별화를 이끌어 내는 요소입니다.
1972년 현재의 클래식 컬렉션의 뿌리가 되는 모델이 여럿 등장합니다. 이들 시계를 시작으로 클래식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되죠. 200여년 전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쌓아 놓은 위대한 유산을 포켓워치가 아닌 손목시계로 탐닉할 수 있습니다. 브레게 스타일이 선사하는 정교하게 세밀하며 우아한 디테일과 투르비용이나 각종 컴플리케이션 기능은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없었다면 지금도 누릴 수 없을지 모릅니다. 브레게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클래식 컬렉션 덕분에 어떤 시계 브랜드보다도 클래식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브랜드입니다.
클래식컬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클래식 Ref. 7137의 기원은 1970년대 중반에 선보인 클래식 Ref. 3130입니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787년 퍼페추얼 기능에 기반한 쿼터 리피터 포켓워치 넘버 5가 클래식 Ref. 3130의 기반이 됩니다.
원래의 기능을 문페이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포인터 데이트로 어레인지 해 아름답고 섬세한 기요세 다이얼 위에 올렸습니다. 큰 틀은 유지하면서 클래식 Ref. 3137 같은 마이너 체인지 모델을 거친 후, 현재의 클래식 Ref. 7137로 이어집니다. 요즘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39mm 지름으로 크기를 키웠고, 다이얼에 블루 컬러를 도입했습니다. 기요세 패턴도 모던한 느낌을 내도록 변화를 가미했습니다.
문페이즈 바로 아래에 접한 스몰 다이얼, 그 좌우로 펼친 데이데이트 윈도우는 균형미와 서정성을 동시에 잡은 클래식 Ref. 7337의 얼굴입니다.
클래식 Ref. 7337은 1823년 일반고객에 판매한 포켓워치 넘버 3833을 계승합니다.클래식 7137과 마찬가지로 손목시계 버전으로 어레인지 한 클래식 Ref. 3337이 원조입니다. Ref. 3XXX의 시대는 무브먼트를 스켈레톤 가공하고 인그레이빙 장식을 곁들인 모델이 종종 있는데 매우 매력적인 컬렉팅 대상이며, Ref. 3337도 그 중 하나입니다. 클래식 Ref. 3337은 완전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대신 초침을 생략했으나, 클래식 Ref. 7137이 나오면서 4시와 5시 방향에 걸쳐 초침이 부활해 다이얼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브레게 가문은 프랑스 항공 역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루이 샤를 브레게는(Louis charles breguet) 1911년 브레게 항공기를 설립해 다수의 항공기를 제작한 바 있습니다. 브레게는 1950년대에 프랑스 공군을 필두로 파일럿 워치 규격을 충족하는 타입 20를 납품했습니다. 이후 민간용 파일럿 워치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타입 XX는 파일럿 워치지만 브레게가 만든 시계 답게 클래식하며 우아한 디테일이 특징입니다. 2023년 타입 XX 컬렉션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1950년대 1세대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클래시컬한 외관과 새로 설계한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가 어우러져 새로운 세대의 막을 올렸습니다.
새로운 타입 20(XX) 컬렉션은 우선 두 가지 모델로 선을 보였습니다. 군용버전으로 소개되는 타입 20 Ref. 2057은 1955년부터 59년에 걸쳐 프랑스 공군에 납품했던 모델에서 착안해 디자인을 완성했습니다.
좌우로 배치한 두 개의 카운터 중 3시 방향의 30분 카운터는 9시 방향의 스몰세컨드에 비해 크게 디자인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12시 방향에 야광팁을 올려 놓은 코인엣지 베젤과 큼직한 양파모양 크라운은 파일럿이 비행 중에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습니다. 탑재한 칼리버 7281은 파일럿 워치의 필수 기능인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와 36,000vph 진동수로 1/10초 측정을 지원합니다. 디테일과 기능으로 타입 XX 컬렉션의 정통성을 입증합니다.
타입 20 Ref. 2057과 함께 등장한 타입 XX Ref. 2067은 민간용 버전으로 소개됩니다.
두 개의 카운터를 다이얼 위에 올린 타입 20 Ref. 2057과 달리 세 개의 카운터를 가집니다. 6시 방향에 12시간 카운터를 하나 더해 더욱 긴 시간을 카운팅 할 수 있습니다. 3시 방향의 카운터는 15분 카운터로 변경되었습니다. 프랑스 항공시험소(Centre d'Essais en Vol)와 해군항공대에 납품한 모델이 기반이기 때문에, 이륙 전 15분의 기체확인에 필요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함 입니다. 이것은 1957년의 타입 넘버 2998이 지닌 특징의 하나입니다. 12시간 표시를 올린 양방향 회전베젤과 알파핸즈의 사용도 같은 맥락으로 충실하게 클래식 파일럿 워치를 재현했습니다. 타입 XX Ref. 2067의 엔진은 칼리버 728이며 타입 20 Ref. 2057의 칼리버 7281과 기본적인 사양은 동일합니다.
다이버 워치처럼 깊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시계는 브레게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브레게가 물과의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780년 항해에 있어 필수품인 ‘매우 정확한 해상용시계’ 마린 크로노미터(Marine Chronometer)를 만들기 시작해 1815년부터 본격 생산에 임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넘버 3136으로 명명한 마린 크로노미터를 1822년 프랑스 왕립해군에 납품했다는 내용도 아카이브에서 확인됩니다. 역사적 배경과 클래식 컬렉션을 접목해 1990년 해양 스포츠에서 사용할 시계인 마린을 발표합니다. 클래식 컬렉션을 기반으로 50m 방수 같은 스포츠성을 강화한 1세대 마린은 더욱 스포츠 워치에 가까워진 2세대(2005년)로 이어집니다. 현재의 3세대는 바다와 해양 스포츠를 테마로 더욱 농익은 디테일을 선사합니다.
마린 컬렉션에서 가장 기본인 쓰리핸즈 + 데이트 기능의 마린 Ref. 5517이지만 마린 다운 디테일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계이기도 합니다.
3세대에 접어들면서 보통의 러그 디자인 대신 브레이슬렛을 연결했을 때 일체형처럼 보이는 러그로 바꿨습니다. 그 덕분에 매우 짧은 러그 투 러그는 가는 손목의 소유자도 브레게의 스포츠 워치를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2세대에서 실험했던 스틸 케이스는 가벼운 티타늄으로 대체되었고, 화이트 골드와 로즈 골드의 선택지도 있습니다. 티타늄 케이스는 짙푸른 바다를 떠올리는 다크 블루의 썬레이 다이얼을, 골드 케이스는 역동적인 파도를 기요세 패턴으로 새겨 스포츠 워치에서도 클래식하면 브레게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항로의 길라잡이 마린 크로노미터를 앞세워 거친 바다를 해치며 전세계를 누비던 역사를 기능으로 옮겨온 시계가 마린 오라문디 Ref. 5557입니다. 브레게 스타일로 다이얼을 장식한 대륙과 대양은 마린 크로노미터를 만든 역사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마린 오라문디 Ref. 5557은 임의로 두 개의 시간대를 설정한 뒤, 빠르고 간단하게 전환할 수 있는 기능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해외에 나갔을 때 현지시간과 홈타임 또는 설정한 임의의 시간대를 케이스 8시 방향의 버튼 하나로 간단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낮과 밤을 표시하는 인디케이터, 시티 인디케이터와 한 팀을 이룹니다. 타국의 낯선 땅을 누비는 여행자는 물론 시간여행자를 위한 멋진 기능입니다.
바이버에서도 브레게 클래식, 타입20, 마린 등의 상품의 등록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변치 않는 클래식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