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츠 시계가 나타나기 전, 기계식 시계의 미덕은 정확성이었습니다. 정밀한 시계는 곧 뛰어난 품질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오차 없이 측정해야 했던 천문대는 크로노미터 경연 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했고, 별다른 마케팅 수단이 없던 시절의 워치메이커에게는 시계의 품질을 공인받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 일본 시계가 우승을 독차지하자 스위스는 천문대 경연 대회 자체를 없애버리는 결단을 내립니다. 대신 1973년 라쇼드퐁에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 기관(COSC)을 출범시켰죠.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크로노미터'라 하면 여기에서 인증받은 시계를 의미할 정도로 강력한 공신력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의 성능은 점점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COSC 인증에 만족하지 못한 몇몇 브랜드는 독자적인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파텍 필립과 롤렉스, 그리고 스위스 계측한 연방학회 METAS와 함께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도입한 오메가 및 튜더를 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시계 인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기계식 시계의 품질을 약속하는 보증 마크이니까요.
시계 완제품이 아닌 무브먼트만을 검사합니다. 그리고 시계 구성 요소의 50% 이상을 스위스에서 생산해야 하며, 총생산 비용의 60% 이상이 스위스에서 발생해야 하는 ‘스위스 메이드’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검사에 임하는 무브먼트는 15일 동안 5개 자세(포지션)와 8°, 23°, 38°의 세 가지 온도에서 얼마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평가받습니다. 하루 평균 오차는 -4~+6초에 머물러야 합니다. 1년에 200만 개 이상의 무브먼트가 COSC 인증을 받는데, 스위스에서 수출하는 시계의 약 15%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합니다.
스위스 안에서도 고급 시계 제조지 제네바 지역의 시계를 보호하고 그 우수성을 알리고자 1886년에 만들어진 인장입니다. 가장 오래되었죠.
인증 기준은 고급 무브먼트를 가늠하는 12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집니다. 블랙 폴리싱, 앵글라주(모서리 모따기) 등 무브먼트 피니싱을 주로 살피는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수한 구조와 미감의 무브먼트를 평가하려는 목적입니다. 2012년부터는 방수, 정밀도, 기능, 파워리저브 등 시계 전체를 아우르는 복합 인증 제도로 발전했습니다.
제네바 씰을 받아온 브랜드는 바쉐론 콘스탄틴(1901년부터 받아왔습니다.), 쇼파드, 로저드뷔, 까르띠에 등이 있습니다. 최근 루이비통도 새로운 땅부르 워치에 제네바 씰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파르미지아니와 그 산하의 무브먼트 매뉴팩처 보셰를 중심으로 쇼파드, 보베 등이 공동 설립한 플러리에 퀄리티 재단이 발급하는 인증입니다.
100% 스위스 제조 여부, 무브먼트 피니싱 외에도 COSC, 실제 마모 정도를 테스트하는 크로노피어블, 실제 사용을 전제하는 독자적인 테스트인 플러리테스트를 통해 시계 전반을 엄격하게 검수합니다. 스펙으로만 따지면 스위스의 최상급 시계만 받을 수 있는 수준이지만 실제로 인증을 받는 시계는 창립 브랜드인 파르미지아니, 쇼파드, 보베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제네바 씰을 발행⋅관리하는 타임랩(Timelab)이 2014년에 새롭게 발표한 인증 표준으로, 크로노미터 검사와 더불어 방수, 항자성, 파워리저브 등 기능적 측면까지 포괄합니다.
스위스에서 제작한 모든 시계를 대상으로 하며, 크로노미터 검사 기준 역시 한발 더 나아가 COSC와 동일한 ISO/CEI 3159를 따르면서 무브먼트가 케이스에 조립된 상태에서 진행합니다. 이 때문에 COSC가 진화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COSC 인증 무브먼트를 케이스에 조립한 후 10일 동안 8개의 테스트를 가합니다. 방수, 온도 변화는 물론, 파워리저브의 상태에 따라 오차가 얼마나 다른지도 체크합니다.
무엇보다 15,000가우스의 자기장에 노출해 현대 환경의 중요한 화두인 항자성을 중시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실리콘 부품을 다룰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한 것이죠. 심지어 검사 자세(포지션)도 6가지에 하루 평균 오차도 0~+5초 이내를 요구하는 등 COSC 인증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합니다. 게다가 모든 검사는 인증 기관이 아니라 브랜드 내부에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스위스 계측학 연방학회(METAS) 소속 직원이 상주하는 시스템입니다.
여러모로 COSC 인증보다 까다롭지만, 오메가는 2014년부터 코-액시얼 시계를 우선으로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튜더는 올해 블랙 베이 세라믹에 처음으로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했고요. 검사 조건을 감안했을 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9년, 파텍 필립은 새로운 자사 인증을 발표했습니다. 무려 120년 이상 함께했던 제네바 씰에 영영 작별을 고했기 때문에 시계 업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파텍 필립의 새로운 기준은 제네바 씰의 요구 사항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여기에는 무브먼트뿐 아니라 케이스, 다이얼, 핸즈, 푸시버튼, 스트랩의 스프링 바, 그리고 완성 시계의 미적⋅기능적 측면까지 포함됩니다. 정확성도 COSC보다 엄격합니다. 무브먼트가 지름 20mm 이상인 경우 하루 오차는 -3~+2초 이내, 20mm 이하인 경우에는 -5~+4초 이내여야 하죠. 게다가 파텍 필립 씰에는 시계 업계 최초로 평생 서비스를 약속하는 조항도 포함됩니다. 1839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제작한 모든 시계에 대해 A/S와 복원을 책임진다고 합니다.
롤렉스는 초창기부터 자체적으로 크로노미터를 실현해 왔습니다.
스위스에서 정밀성 인증이 공식화된 1951년부터 ‘Officially Certified Chronometer’ 문구를 각인한 레드 씰을 사용했고, 1957년에는 칼리버 1500(한층 정밀한 성능을 자랑했습니다.)의 탄생을 계기로 최상급 크로노미터(Superlative Chronometer)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COSC)이 발효한 1973년부터는 COSC 인증을 진행하며 자체 테스트의 난이도를 함께 올렸죠. 그리고 2015년, 마침내 롤렉스의 최상급 크로노미터 인증이 다시 한번 엄격한 기준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모든 롤렉스 무브먼트는 COSC 인증을 당연히 거치며, 케이스에 조립된 이후에는 정확성, 파워리저브, 방수, 셀프와인딩 성능 등을 점검받습니다. 특히 롤렉스에서 자체 개발한 정확성 검사는 COSC보다 2개 더 많은 7개 자세(포지션) 테스트와 역동적인 움직임 테스트를 통해 실제로 시계를 착용하는 상황을 재현하는 특유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루 허용 오차는 -2~+2초에 불과합니다. ‘Superlative Certified’가 새겨진 그린 씰이 이를 입증합니다.
Tampa
Writer
시계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