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e in the Range, hopped out the Lexus
레인지로버를 타고 들어와 렉서스에서 나왔지
Every year since, I been on that next shit
해마다 나는 다음 레벨로 가고 있어
Traded in the gold for the platinum Rolexes
골드(돈)로 플래티넘롤렉스를 거래했어
Now a nigga wrist match the status of my records
이제야 내 시계가 내 음반판매량(100만장:플래티넘)과 똑같아졌군
롤렉스를 활용한 영리한 언어유희가 돋보인다. 롤렉스가 담긴 랩 가사를 하나 인용하고 싶어서 많이 고민했다. 어떤 래퍼의 가사를 인용할까 하다가 제이지를 선택했다. 제이지야말로 래퍼들이 롤렉스를 살 수 있게끔 힙합을 거대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래퍼들의 롤렉스 사랑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많은 래퍼들이 롤렉스를 사고 롤렉스에 대해 가사를 쓴다. 인터넷에는 ‘래퍼들은 왜 롤렉스를 좋아하는 건가요?’ 같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속시원한 답변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모두 현상과 결과만 이야기할 뿐 원인과 배경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정답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절대적인 정답이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이 갑자기 내려와 ‘이제부터 래퍼들은 롤렉스를 사랑해라, 난 다시 올라간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합적인 관점과 합리적인 추측이 필요하다. 다음은 롤렉스가 어쩌다 힙합계의 상징적인 물건이 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먼저, 왜 다른 시계 브랜드가 아니라 롤렉스인지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왜 음악에 몇천만 원짜리 시계가 등장하는가’, 그리고 ‘왜 래퍼들은 몇천만 원짜리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최대한 드러내려고 하는가’다.
힙합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셀프메이드‘(selfmade)다. 뜻이 가장 비슷한 한국어로는 자수성가가 있다. 힙합을 창시한 미국 흑인들은 게토(ghetto) 출신이 많다. 게토는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를 뜻한다. 뒷골목에서 마약이 빈번하게 거래되고 많은 이가 감옥으로 잡혀가는 곳, 아침에 일어나면 경찰차 소리가 들리고 어제 같이 놀았던 친구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곳,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 바로 게토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다. 게토를 벗어나기 위한 두 가지 꿈, 바로 '힙합'과 '농구'였다. 랩으로 성공해 부와 명예를 얻어 게토를 벗어나거나, 아니면 농구로 NBA 스타가 되어 게토를 벗어나거나. 만약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이루면 그들은 셀프메이드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셀프메이드를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허슬’(hustle)이다. 여기서 허슬은 고군분투 정도의 의미다. 가족을 부양하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를 하는 것, 어제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최대한 빡세게 살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게토에 사는 젊은 흑인남성들의 기본 멘탈리티다. 허슬은 그들이 처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 곧바로 행해야할 실천적인 행동양식이고 동시에 성공으로의 지름길이다. 게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허슬 하드‘(hustle hard)해야 하는 것이다.
제이지는 셀프메이드의 아이콘이다. 그는 브루클린의 공공임대주택단지(게토)에서 태어났지만 래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허슬) 결국 큰 성공을 거두며 게토를 벗어나게 됐다(셀프메이드). 그는 아마 대략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게토에서 태어나 비참하게 살 운명이었어. 하지만 내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바꿨지. 이제 나는 부자가 됐고 명예도 얻었지. 나를 자수성가의 화신이라고 불러줘!"
셀프메이드에 성공한 래퍼들의 다음 할 일은 자신의 현재 삶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예전에는 ‘스웨거(swagger)'라고 했고 요즘에는 ’플렉스(flex)'라고 한다. 스웨거 혹은 플렉스는 단순한 허세나 돈자랑이 아니다. 대신에 이것은 자신의 외적/내적 면모를 스스로 자신감 있게 드러낼 때 발생하는 복합적인 멋 혹은 아우라에 가깝다.
바로 이 자리에 롤렉스가 등장하게 된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지금은 가질 수 있게 된 것. 물려받은 재산으로 산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산 것. 쉽게 번 돈이 아니라 게토를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번 돈으로 손에 얻은 것. 래퍼들에게 롤렉스는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다. 대신에 그것은 역경과 싸워 얻은 전리품이고, 내 삶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데 성공한 자가 받은 선물이며, 성취를 인정받은 일종의 인증품이다. “바닥에서 시작했는데, 나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게 내 성취를 보증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래퍼 말고도 음악으로 성공한 아티스트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힙합의 장르적 특수성이 작용한다. 래퍼 자신의 삶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는 1인칭 시점의 음악, 거짓말에 엄격하고 늘 진실할 것을 강박 수준으로까지 외치는 음악, 야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을 하겠다, ~이 되겠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는 음악, 개인의 위대함을 기리고 성취를 자축하는 음악. 힙합의 이런 장르적 특수성 덕분에 롤렉스는 다른 장르와 달리 힙합 안에서 공개적으로 끊임없이 언급되며 힙합을 상징하는 시계가 될 수 있었다. 성공한 포크 뮤지션이 롤렉스를 방 안에 둔 채 서정적 사랑에 관한 신곡을 발표한다면, 래퍼들은 롤렉스를 구입한 스토리 자체를 신곡으로 만들어 발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시계 브랜드가 아닌 롤렉스일까.
그리고 이것은 그저 우연일까. 다음 글 에서 이어진다.
Day-Date 40 228238
40mm, 샴페인/다이아몬드, 프레지던트
Day-Date 36 128238
36mm, 샴페인/다이아몬드, 프레지던트
김봉현
Writer
힙합 저널리스트. 하고 싶은 일에 맞는 직함이 없어 새로 만들었고 아직까진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