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 라인업을 제외하면 볼 게 없는 브랜드로 취급당하곤 합니다. 이 가운데 로열 오크와 매우 닮았지만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는 로열 오크 오프쇼어가 있습니다. 로열 오크가 오데마 피게의 도화지라면, 오프쇼어는 오데마 피게의 실험실과 유사합니다. 케이스 자체에서부터 제약 없는 실험정신을 발휘하는 오프쇼어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972년 최초 출시된 로열 오크는 쿼츠 파동으로 기계식 시계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을 때 ‘럭셔리'에 대한 개념을 재구성한 타임피스였던 반면, 오프쇼어는 경제 성장과 글로벌화를 맞이하여 자신감이 붙은 80년대의 정신을 상징하는 타임피스였습니다. 혁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오프쇼어는 기존의 로열 오크와 다른 성질을 지닌 컬렉션으로 진화할 수 있었죠.
1993년 최초 출시된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초기에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포츠 워치지만 늘 우아함이 강조되었던 로열 오크가 투박한 42mm 케이스로 나타나자 평론가들은 시계의 웅장한 사이즈에 뒷걸음치고 말았었어요. (심지어 당시 로열 오크의 주요 모델은 36mm였습니다.)
로열 오크의 아버지 제랄드 젠타는 오프쇼어 발표 행사 중 박차고 들어와 로열 오크의 역사와 명예를 훼손했다는 혹평을 쏟아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유럽의 젊은 부유층은 캐주얼함이 강조된 럭셔리 스포츠 워치라는 대담함에 색다른 매력을 느꼈고, 오프쇼어의 인기도 상승하게 됩니다.
최초의 오프쇼어 Ref. 25721ST는 케이스도 크고, 두께는 무려 16mm입니다. 이 웅장한 크기에 어울리는 ‘비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고, 오프쇼어 컬렉션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기 시작합니다.
소비자층 사이에서 캐릭터가 확실해진 오프쇼어는 ‘오버사이즈' 라는 특징이 곧 최대 무기가 되었고, 오데마 피게는 다양한 금속 소재의 25721 레퍼런스 제작에 돌입했습니다. 90년대 후반까지 연이어 출시된 옐로 우골드, 화이트 골드, 그리고 플래티넘까지 무려 400g이 넘는 무게입니다. 참고로 롤렉스의 가장 무거운 시계(데이토나 Ref. 116506)는 오프쇼어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282g입니다.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30년 동안 진화하면서 컬렉션을 구성하는 모델들이 4가지 라인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인체공학적 라인, 다이버 라인, 비스트의 복각 라인, 그리고 실험적인 라인. 일관된 디자인의 표준 로열 오크 컬렉션과 달리 각자의 특색을 자랑하는 라인이 오프쇼어 컬렉션을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Royal Oak Offshore Chronograph 26480TI.OO.A027CA.01
42mm, 블루
Royal Oak Offshore Chronograph 26238TI.OO.2000TI.01
42mm, 다크
Royal Oak Offshore Diver 15720ST.OO.A027CA.01
42mm, 블루
한 컬렉션 안에 4가지 각기 다른 라인이 존재해서 오프쇼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4개의 라인의 차이점을 짚어가기보다, 표준 로열 오크에는 없는 특징들이 무엇인지 정리하면 오프쇼어 컬렉션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코닉한 팔각 베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로열 오크의 타피세리 다이얼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오프쇼어 컬렉션은 전반적으로 가장 큰 ‘메가 타피스리’를 채택합니다.
이 사각 패턴은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룩이 강조되어 오프쇼어의 우람한 케이스 사이즈와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오리지널 로열 오크의 ‘쁘띠 타피세리’ 다이얼은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비스트의 복각 모델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프쇼어는 스포츠 워치의 본질인 실용성을 위해 러버 스트랩을 장착하는 모델들이 많습니다. 브레이슬릿은 현재 비스트를 복각한 라인에만 적용될 정도입니다. 러버 소재는 가스킷으로도 장착되는데요. 50m의 방수 가능한 일반 로열 오크와 달리, 오프쇼어는 베젤과 케이스 본채 사이에 외부 유입을 차단하는 가스킷이 장착되어 100m 방수 성능을 탑재합니다. 오프쇼어의 케이스는 평균적으로 일반 로열 오크보다 약 4mm 정도 두꺼운데, 이 가스킷도 두께 차이에 한몫합니다.
오프쇼어는 웅장함을 강조하는 컬렉션이지만, 표준 로열 오크에서 찾을 수 없는 섬세한 디테일도 많습니다. 특정 모델은 공기역학적 스포츠카의 디자인 철학을 따르는데, 크로노그래프 푸셔(버튼)가 케이스 본체와 평행을 그리고 6시 방향에서 12시 방향까지 사파이어 크리스탈도 미세하게 커브를 그립니다. 또한 크로노그래프의 타키미터 스케일은 오프쇼어에만 적용되어 실용적인 요소도 더합니다.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30년 동안 250개가 넘는 레퍼런스가 제작되었습니다. 1년에도 몇 번씩 새로운 모델이 공개되는데, 평론가와 소비자 모두 의아하거나 당황할 때도 많아요. 대중이 실험작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특히 드뭅니다. 애호가라면 복각 모델이 출시될 때와 실험적인 모델이 출시될 때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패턴도 익숙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데마 피게는 오프쇼어를 실험실 삼아 꾸준하게 도전적인 디자인을 출시합니다. 최근에는 음악 테마를 시계 본체에 녹인 ‘뮤직 에디션’이라는 한정판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도전 정신이 오프쇼어의 본질적인 에토스이기 때문에 끊이질 않는 비평에 개의치 않고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낼 수 있었습니다. 위블로와 리차드 밀 등 많은 신세대 럭셔리 워치메이커들이 오프쇼어를 벤치마킹할 만큼의 영향력 또한 무시 못 하고요. 여전히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새로운 마니아층을 형성해 나가는 듯 보입니다.
Young
Writer
내 꿈은 시계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