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까르띠에 탱크는 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까르띠에의 플래그십이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중 하나인 탱크는 뚜렷한 아이디어 하나를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사각 디자인과 로마 숫자 인덱스에 세심한 디테일이 가려지지만, 탱크는 사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왔습니다.
최초의 까르띠에 탱크는 고귀하고 클래식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1차 세계 대전 시절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탱크를 위에서 바라본 모양에서 영감을 받아 직선 형태의 뼈대를 그려낸 디자인이 탱크의 시그니처입니다. 1919년 최초의 판매용 모델은 오직 6개가 제작되었고, 판매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럭셔리 메종 답게 옐로우 골드와 플래티넘으로 케이스를 제작하였습니다.
탱크의 ‘최초’라는 타이틀을 계승한 노말의 현행 라인업은 탱크 컬렉션의 가장 고가의 라인 중 하나입니다. 현행 라인은 골드와 플래티늄으로만 제작되며, 한정된 개수의 아주 높은 리테일가격으로 발매되고 있습니다. 최저가 모델은 5천만 원이며, 스켈레톤 다이얼을 채택한 모델의 경우 1억 원이 넘습니다.
탱크 최초의 상용 컬렉션인 루이 까르띠에(이하, 루이)는 1922년 출시되었습니다. 정사각형에 가까웠던 노말의 비율이 직사각형 형태로 소폭 늘어나며 이 황금비율은 탱크 디자인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루이는 원조인 탱크 노말보다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하고 긴 생산기간을 누려 인지도가 더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루이를 ‘클래식’ 탱크로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또한 탱크 루이는 언제나 골드 소재로만 제작되어 한층 고급스러움을 전달합니다.
Tank Louis Cartier SM WGTA0010
29.5mm x 22mm, 실버
탱크 컬렉션 보편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탱크 머스트는 쿼츠 파동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1970년대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기계식 시계 산업의 규모는 반토막 났고, 까르띠에도 내부적으로 힘든 시기였다고 합니다. 까르띠에 가문은 이미 회사를 판 상태였죠. 3개의 브랜치(파리, 런던, 뉴욕)는 뿔뿔이 흩어졌지만, 까르띠에 파리의 새 회장은 런던과 뉴욕 부티끄를 인수하며 회사를 다시 통합시켰습니다.
새로운 매니지먼트 아래 까르띠에는 시대 흐름에 발을 맞추기 위해 럭셔리하우스의 고집을 버리게 됩니다. ‘까르띠에 필수품(Les Must de Cartier)’라는 디퓨전 라인이 설립되고, 탱크 루이보다 저렴하고 대중 친화적인 시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977년, 까르띠에는 탱크 ‘머스트’를 출시했습니다.
탱크 머스트(이하 머스트)는 쿼츠와 대량 생산되는 ETA 무브먼트를 응용해서 럭셔리하지만 중산층도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를 형성했어요. 소비자층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다이얼 스타일도 시도했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머스트 이후로 다른 탱크 컬렉션들도 다이얼을 자유롭게 변화시켰습니다.
2004년부터 2021년까지는 ‘탱크 솔로'라는 컬렉션이 머스트의 자리를 대신했는데요. 납작해진 러그 역할을 하는 ‘브롱카’, 구슬 모양의 블루 사파이어 카보숑, 그리고 폴딩 클라스프로 더 캐주얼한 스타일을 연출했습니다. 머스트와 비슷한 세일즈 전략으로 대부분이 쿼츠로 생산되었고, 스틸 소재로도 제작되어 신규 고객 유입에 성공했어요. 남성들 사이에서는 XL 사이즈의 솔로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2021년, 탱크 솔로가 단종됨을 알리며 탱크 머스트가 신규 컬렉션으로 재출시되었습니다. 머스트에도 스틸 소재가 추가되어 엔트리 워치 포지션을 탈환했고 인기 상품인 XL 사이즈는 솔로와 차별화된 실버톤의 기요셰 패턴을 채택했습니다.
Tank Must SM WSTA0042
29.5mm x 22mm, 실버
Tank Must LM WSTA0041
33.7mm x 25.5mm, 실버
Tank Must SM WSTA0051
29.5mm x 22mm, 실버
Tank Must LM WSTA0052
33.7mm x 25.5mm, 실버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뉴욕, 파리, 런던 부띠크를 묶어 ‘템플’ (Les Temples)이라고 부릅니다. 탱크에는 각 지역의 부띠크를 상징하는 탱크 컬렉션도 있습니다.
1989년에 탄생한 탱크 아메리칸은 1921년에 출시된 빈티지 컬렉션인 탱크 상트레의 복각 컬렉션입니다. 탱크 아메리칸은 케이스 본체가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날렵하고 길쭉한 모양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쿼츠 파동을 극복한 까르띠에는 아메리칸에 데이-데이트와 크로노그래프 컴플리케이션까지 탑재하며 전통적 워치메이커로서의 자신감도 표출했었습니다.
1996년에 출시되어 다이애나비가 애용하던 것으로 유명한 탱크 프랑세즈입니다. 기존의 탱크보다 더 각진 케이스, 케이스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체형 브레이슬릿이 특징입니다. “Française” 라는 단어 자체가 프렌치의 여성형으로, 시크하고 당당한 젊은 여성을 겨냥했던 컬렉션입니다. 커리어 우먼과 여성 리더들이 늘어나면서 역동적이고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함을 유지한 탱크 프랑세즈는 대중들에게 까르띠에의 섬세함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습니다.
프랑세즈보다 더 모던하고 유니섹스 매력을 어필한 앙글레즈. 다이얼의 색상만 달라져도 드라마틱한 변화로 인식되는 시계 시장에서 앙글레즈는 꽤 파격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스포티해지는 시계 트랜드에 부응하여 브롱카의 속을 비워내 크라운을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한 근 110년 동안 우리와 함께 진화한 탱크에는 시대의 정신과 소비문화가 반영되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까르띠에 탱크는 거의 매년 라인업, 리바이벌, 리부트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수시로 컬렉션이 단종과 재출시를 반복하기 때문에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네요.
Young
Writer
내 꿈은 시계왕.